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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4/08/06 백제 아직기(阿直岐), 일본태자의 스승이 됨.
1281/05/03 (고려 충렬왕 7)  고려-몽고 연합군, 제2차 일본 정벌
1592/05/03 임진왜란일본군 서울 침입
1592/04/13 임진왜란 침략. 오후 5시경 부산포 앞바다에 일본 침략군이 도착함.
1592/05/02

1592년(선조 25) 5월 2일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8일 만에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같은 해 4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가 4개의 부대로 나뉘어 조선 침략을 개시했다. 선조는 김성일을 경상우도초유사로, 김륵을 좌도안집사로 삼아 민심 수습과 항전을 독려했다.

1598/11/19

(조선 선조 31)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전사, 노량진 앞바다에 모여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였는데 뱃머리에 나가 싸움을 독려하던 이순신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순신은 죽는 순간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5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전투가 그의 생애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이다.

1653/08/16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인도회사의 선원인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다. 일행은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도중 폭풍우를 만났으며 제주도에 상륙한 후 서울로 압송되었다. 조선은 이들의 표류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해 살도록 했다. 앞서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한국 이름은 박연)가 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1655년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구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일로 일행은 서울에서 추방되어 전라도 병영으로 이속되었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받고 병영의 막일에 시달렸으며, 흉년에는 구걸을 하거나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살기도 했다. 1666년(현종 7) 9월 생존자 16명 중 8명이 배를 구해 일본으로 탈출했으며, 2년 뒤 네덜란드의 요청으로 남은 일행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하멜 표류기>(1668)로 엮어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했다. 하멜 일행은 서양세계를 조선의 민간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하멜 표류기>는 한국을 서방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1854/03/17 일본군, 유황도(硫黃島)에서 전멸.
1875/08/21 일본 군함 강화도 등에 침입 약탈 살육
1879/05/19 (조선 고종 16년) 일본에게 원산개항을 허가하고 인천개항을 거절.
1880/04/17 서울에 일본 공사관 설치 
1880/07/05 수신사 김홍집일행 일본 향발.
1880/07/06 조선 고종 17년 수신사 김홍집 일행, 일본 동경 도착.
1881/02/09 고종, 일본에 파견할 신사유람단 임명.
1882/07/10 제물포조약 체결(임오군란으로 인한 일본측피해 보상).
1882/11/12 (조선 고종 19)  탕춘대에서 청, 일본군대 사열.
1884/12/04 갑신정변 발생.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파는 일본공사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
1884/12/06 창덕궁서 청-일군 충돌. 김옥균 등 개화파 일본으로 망명.
1884/12/11 개화당의 김옥균 등 일본으로 망명.
1885/04/18

청 나라와 일본 천진조약 체결.

청 나라와 일본중국 텐진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이권을 놓고 자기들끼리 맺은 조약. 청 나라 대표는 직례총독 이홍장, 일본 대표는 이또. 조선 주둔 양국군의 철수에 합의. 이 조약이 맺어지기 전까지는 조선은 일본보다는 청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텐진조약이 맺어짐으로써 일본은 청 나라와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었다.

1886/06/12 일본정부, 김옥균 추방령
1886/05/11 일본정부, 김옥균 추방명령.
1894/07/10 일본, 서울-인천 전선가설공사 시작.
1894/02/22 (조선 고종 31)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 중국 상해에서 암살당함.
    1851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옥균은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 등의 영향을 받고 개화 사상에 눈뜨게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새 문물을 살펴보았다.
    1884년 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새 내각을 조직했으나 청 나라의 개입으로 3일만에 무너지고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망명했다.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는 정부가 보낸 자객이다.
1894/07/23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이 흥선대원군을 옹립하고 친일정권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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