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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10-11
 제목  <기획>기고2 : 부르심은 각자, 사역은 동역이다.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135호(2007/11)  성경본문  
 조회수  9073  추천수  82
윤규석 선교사

I. 누가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가?

19세기의 선교
선교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세기는 윌리암 캐리의 이방인에 대한 연구를 교회들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들은 많은 선교사들을 세계 곳곳으로 보내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선교사역은 당시의 열악한 교통 통신수단과 과학 기술 수준으로서는 전적으로 믿음 있고 능력 있는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한 장 보내도 몇 달 후 혹은 이듬해가 되어야 간신히 답장을 받아볼 수밖에 없었고. 선교사들의 안부마저 제 때에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선교사들은 평생 안식년을 한 번도 가질 수 없어 교회에 선교 보고를 해 본 적이 없는 선교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모든 것을 각자 해결하며 사역해야 했다. 그래서 선교사의 믿음과 헌신 자체가 선교 사역이었고, 그 사역의 열매는 선교의 전설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선교
20세기 들어 두 차례 세계 대전 중에 선교에 소강상태를 보이던 세계의 그리스도 교회들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세계선교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힘차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는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세계 선교의 대열에 참여해 복음 전하는 일에 우리의 역량을 더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교회들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세계 선교는 19세기의 세계 선교와는 그 사역의 측면에서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통 통신수단을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이 19세기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수준으로 발달한 것이다. 몇 달씩 걸리던 항해 거리가 오늘날에는 불과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웬만한 오지에서도 위성 중계로 실시간 의사교환이 가능한 상황이다. 지금은 선교사들이 각종 기술과 장비로 협력하며 훨씬 더 많은 일을 훨씬 더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안전도 수시로 체크하여 19세기와 같이 값비싼 희생을 치르는 일도 훨씬 줄어들었다. 즉, 지금은 선교사역이 ‘선교사 개인’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라 ‘선교사들의 동역’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선교단체가 사역의 주체다.
이 시대의 선교사역의 분명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선교사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제대로 동역하는 선교단체의 능력이 선교사역의 열매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즉, 선교 사역의 주체가 선교사가 아니라 선교단체라는 사실이다.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능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선교단체의 동역을 통해 효과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은 사도 바울의 때부터 선교사역은 언제나 동역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 이 시대에 들어서는 그 동역의 중요성이 훨씬 더 커진 것이다. 앞으로도 선교사역에서 이 동역의 중요성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 선교사역에서 동역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바로 선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믿음의 내용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바라보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역하는 것이 바로 선교단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서 좋은 선교사가 되어 선교사역을 제대로 잘 감당하려면 어떤 선교단체의 일원이 될 것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II.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입장

10년이 흘러갔다.
또 선교사로 헌신한 어떤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보자. 대개 선교에 헌신한 후에 선교지로 떠나기까지는 대개 오 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다. 학교도 마치고, 주변 정리도 해야 하며, 선교 준비와 훈련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선교지에 나가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이 젊은 선교사는 잘 적응해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지쳐서 선교사역을 접고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을 겪는 동안 또 오 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다. 결국 십 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스물다섯 살에 선교에 헌신한 사람이라면 이미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 그리고 그가 다시 한국의 상황에 적응하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게 된다. 그는 이제 장년의 문턱에서 떠내려 버린 황금 같은 시간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다.

시행착오의 여유가 없다.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보아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십 년 이상을 낭비하고 장년이 되는 입장에서는 인생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고, 이제 인생의 방향을 수정해야 하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든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그가 무엇을 잘 못 선택한 것일까? 선교지를 잘 못 선택할 수도 있다. 혹은 선교 사역의 종류를 잘 못 선택할 수도 있다. 또는 사역의 동역자를 잘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로 선교 단체의 선택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III. 부르심은 각자, 그러나 사역은 동역.

선교는 언제나 동역이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실 때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믿음으로 순종한다. 선교의 소명은 그렇게 각자 응답한다. 그러나 선교의 사역은 항상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선교사역이다. 선교사역은 언제나 동역으로 이루어졌다. 사도 바울에게는 바나바, 실라, 누가, 디모데, 마가, 디도 등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윌리암 캐리에게도 세람포의 동역자들이 있었고, 허드슨 테일러에게도 그와 함께 하던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선교의 위인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 다만 동역의 핵심 인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사역은 언제나 동역으로 진행되었다.

파송은 교회가, 사역은 선교단체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주체는 교회다. 그러나 그 선교사들의 사역 주체는 바로 선교단체다.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 즉 교회에게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셨고, 이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선교 단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이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동역함으로써 선교의 사역을 훨씬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은 주님 오시기 전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복음을 들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도우며 긴밀히 동역한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하는 일의 몇 배를 해낼 수 있고, 세 사람은 두 사람이 하는 일의 더 큰 몇 배를 해낼 수 있는 동역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때 선교단체는 바로 이 동역으로 선교 사역을 열매 맺어가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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