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규 기자

“야! 너 교실에 안 들어가!”, “너 왜 또 나와서 돌아다녀!”
조명숙 교감의 호통 속에 ‘여명학교’ 아이들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만 소용없다. 곧 불호령이 떨어지고 쭈뼛쭈뼛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아이들 앞에서는 호되게 꾸지람을 늘어놓는 조명숙 교감이지만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떨어져요. 워낙 공부하는 습관이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이라서 책상에 머물러 있는 훈련을 먼저 시켜야 해요.”

여명학교는 17살에서 24살의 새터민아이들이 초·중·고 과정을 공부하는 학교다. 조명숙 교감이 2003년부터 운영하던 자유터학교(탈북청장년 대상 야학)에서 시작한 것을 몇몇 교회들과 기관이 지원해 2004년 9월 개교했다. 현재까지 19명이 여명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해 남한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사진] 조명숙 교감

현재 33명의 새터민청소년들이 매일 학문을 배우며 남한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미래를 개척할 준비를 여명학교에서 하고 있다.

“왜 이자를 주나요?”

“우리 돈을 은행에서 안전하게 맡아주는데 우리가 은행에 고맙다고 돈을 줘야지 왜 은행이 우리에게 이자를 주나요?”, “선생님, 은행에 돈을 맡기면 통장을 주자나요. 그런데 어제 우리 집에 어떤 아저씨가 ‘통장’이라면서 방문을 했는데……”
여명학교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은행의 기능과 통장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반응한 내용들 중 일부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19세기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조명숙 교감이 이야기하는 북한청소년들을 지도하면서 겪은 어려움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느끼는 문화적 사회적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은행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데 아이들이 도저히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런 개념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다고 조 교감은 이야기한다.
“사실 저런 문제들은 시간의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에 생긴 장벽들은 그렇게 쉽사리 치료되지 않습니다.”
여명학교아이들은 모두 죽음의 사선을 넘어 한국으로 입국했으며 북한과 중국 등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맛봐야만 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온전한 신뢰를 이끌어 내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조 교감의 설명.
“열려있지만 닫혀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북한과 남한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결국 저를 포함한 여명학교 교사들이 그들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장기간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뭘 하며 살 것인가”대신에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늘 종용한다는 조 교감은 “지금은 비록 너희가 남한 아이들에 비해 학업이 처질 수 있으나 통일이 되면 너희는 남한의 어떤 아이들도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한다. 북한과 남한,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한 이 아이들이야 말로 포스트 통일 시대를 이끌어 나갈 매우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 조명숙 교감의 생각. 조 교감은 웃으며 “아이들이 ‘선생님, 북한에서는 평생 꿈이 흰쌀밥에 고깃국 배부르게 먹는 게 꿈이었는데 남한에 와보니 개밥그릇에도 꿈이 있네요’라며 꿈이 너무 많아져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럴 때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말해줍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탈북민선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구약에도 고아와 과부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탈북민 선교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조명숙 교감은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일반 구제사역과 탈북민 선교는 엄연히 다른 성격의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탈북민 사역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의 상처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서로 화해하며 회복을 도모하는 사역입니다. 또한 탈북민들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해주고 아이들의 그들의 존귀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역입니다. 저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너희가 불쌍해서 우리가 너희를 돕는 것이 아니야. 네가 중요하기 때문에 너를 돕는 거란다’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그들이 받는 도움을 잊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후에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통일 후 남한과 북한이 진정한 한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지금 여명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땀방울은 진정 가치 있는 열매로 맺어져야 할 것이다. 이들의 미래를 바라보며 중보하고 축복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