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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7-04-01
 제목  <특집> 강의1 : 교회와 선교 - 한정국 선교사
 주제어키워드  한정국 선교사  국가  
 자료출처  선교타임즈 2007년 4월호  성경본문  
 조회수  7314  추천수  8
한정국 선교사(KWMA총무)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분을 영원히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지상교회(천상교회가 아닌)는 선교적 속성을 갖는다. 이것은 선교가 교회의 많은 속성 중의 하나가 아닌 본질적인 속성인 것을 말하고 있다.

1. 교회역사가 주는 교훈
David Bosch는 그의 저서 ‘Witness to the World’ 라는 책에서 교회의 성격을 ‘Unstable Being’(불안정적인 존재)으로 묘사하였다. 이유는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본질상 불안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역사 분석을 각 시대마다 교회와 선교의 패러다임이 있었다면서 교회가 타락하는 과정과 새롭게 개척되어가는 새로운 교회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대교회당(Cathedral)을 헌당하는 날부터 타락하였다고 지적한다. Unstable Church를 Stable Church로 만들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열심이 큰 교회당부터 지으려 했던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 현장인 텅 빈 큰 교회당에 모인 소수의 노인 신자들의 모습은 그 타락의 결과 일 수가 있다.
한국 교회가 이런 역사적 교훈을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한국은 전체 교인 수는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으나, 중대형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큰 예배당과 수양관, 교회 묘지,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One Step Service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가장 안정적(Stable)인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앞날이 염려스럽다.

2. 현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해
선교사를 선교사에게 맡기고 있는 한국 교회는 모순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즉 전도를 전도사에게 맡긴 교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선교는 보통 제자훈련의 가장 끝 부분에 할애하는 코스이다. 그나마 선교 과목이 있는 것을 감지덕지 할 정도로 선교없는 제자훈련이 많다. 한국의 모든 전도방식(전도법, 전도지 등)을 살펴보면 복음의 제시, 구원의 확신 그리고 인근 교회에 나갈 것을 권고하는 전도성 메시지가 전부이다.
선교는 눈곱조차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초신자에게 선교가 너무 어려워서일까? 창 12장 1절에서 3절을 살펴보면 성경은 아브람의 부르심을 1절에서 선교적 부르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 ‘선교’의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보냄 받음’의 의미가 있다. 아브람은 부름 받음과 동시에 (가나안 땅으로) 보냄 받았다. 그 분의 지시하신 땅이 그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He was called to be sent by God’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고백한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보냄 받기 위해(은혜로) 선택 되어졌다고 말해야 한다. 2절에서 그는 이스라엘 족속의 아비가 되는 민족 전도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고, 3절에서는 땅의 모든 족속의 (구원의)복을 위한 통로 즉 구원의 씨앗 같은 선교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복음 성가 중,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네’라는 찬송은 바로 이 3절을 잘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영리나 기타 전도 방법으로 복음 제시 후 상대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의 확신을 말씀을 통해 가르쳐 줌과 동시에 선교의 확신 즉 ‘오늘 당신은 위대한 결정으로 놀라운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족속을 위한 하나님 구원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멋진 분이 되셨습니다. 당신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축복의 메시지인가? 이것이 부담되는 이야기가 아닌 복된 격려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3. 선교가 왜 제 자리를 잡아야 하는가?

구약 성경의 새롭고 바른 가르침
필자는 이스라엘의 실패적 원인은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이라는 전통적 가르침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범죄는 선교적 불순종이었다. 랄프 윈터는 ‘이스라엘은 선교 족속이었으면서 아브람의 선택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2000년 기간 동안 한 번도 자발적 선교를 타 족속에게 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기적 민족(Ethnocentrism)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예수님 이후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는 어떠하였는가? 필자의 역사 분석에 의하면 이 역시 이기적 역사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이기적일까?’라는 불가사이한 질문에 대답할 길이 없다. 초대 교회가 우선 그러하였다. 사도는 선교사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이방인 첫 교회인 안디옥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개척된 교회가 아닌 핍박받아 흩어진 평신도들이 세운 타발적 선교교회였다.
개신교의 시작인 마틴 루터와 죤 칼빈도 선교적이지 못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데이빗 보쉬는 마틴 루터가 마28:16-20을 잘못 해석하였다고 비판한다. 루터는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으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미 다 이루어 졌다’라고 기술하였다. 루터의 세계는 유럽이었지 이방 세계가 아니었다. 그의 주관심은 썩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종교개혁 후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개신교는 약 230년간 선교의 암흑시대를 맞고, 가장 썩어빠진 로마 가톨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바뀐다. 유럽의 절반을 잃은 가톨릭교회는 예수회를 선두로 하여 정복주의 선교로 지금의 중남미 지역과 필리핀 등지를 가톨릭 영향 하에 두는 선교적 효과를 거둔다. 방법상에 문제는 있어도 예수의 이름을 칠레 남방 얼음산에서 필리핀 산호섬까지 전수하였다.

4. 선교가 교회에 미치는 효과 분석
선교가 교회 속성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선교하는 교회는 가장 자연스러운 복된 교회 모습이다. 교회가 타락됨을 막는 소금 역할을 선교가 하게 되며, 교회 앞날을 인도하는 빛의 역할도 한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타락한 교회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교인과 야합하는 교회이다. 보쉬의 역사 분석에 의하면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질해가며 끝내 타락하고 텅 빈 껍데기 교회로 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교 마인드 없는 QT와 제자훈련은 이기적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첩경이다. 이것은 수많은 제자훈련과 전도법이 개발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정체되고 퇴보되어가는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5.선교가 오용되어 가고 있는 현실 분석
“선교하는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라는 말은 맞을 수도 있으나, 지역교회의 양적 부흥을 위해 선교를 수단화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까지 세계 교회는 선교하였으면서도 이기적인 속성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랄프 윈터는 세계기독교 선교사의 76%는 선교사가 필요 없는 전도된 종족 가운데 일하고 있다고 10여 년 전에 주장하였고, 그 후 심층 리서치를 한 토드 죤스 박사에 의하면 그 수치는 97.6%까지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는 오직 선교사의 2.4%만이 미전도 종족 가운데 일하고 있는 한심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21세기 세계 선교계는 미전도종족선교와 전방개척 선교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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