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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4-12-30
 제목  <이슬람강좌> 이슬람 그리고 아랍어 성경 번역
 주제어키워드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753  추천수  6
이슬람그리고 아랍어 성경번역



󰡐이슬람󰡑의 뜻은 평화가 아니고 복종(submission)이다



무슬림들은 세상을 전쟁의 영역과 평화의 영역 둘로 나눈다. 일부 무슬림들은 세상을 불신자(이슬람을 안 믿는 개인)와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개인)으로 양분하기도 한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의지를 알라께 복종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란 단어는 어휘상 평화(살람)라는 말과 관계없다. 진정한 평안과 평화는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거기에 있다. 󰡐지하드󰡑라는 말은 알라의 길을 위해 자신이 투쟁한다는 말에서 비롯되어 이슬람에 어긋나는 세상의 도둑질, 강간, 살인 등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슬람을 안 믿는 자를 개종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슬람에 적대적인 세력과 맞서 군사적 전쟁을 벌이는 것도 지하드라고 한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지하드라고 말할 때는 대개 후자의 정의를 가리킨다. 그러나 대다수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나 원리주의자가 아니다.



아랍≠이슬람



아랍인과 한국인에게 흔히들 󰡐아랍=이슬람󰡑이라는 공식이 있어 왔다. 아랍 땅에서도 아랍 기독교인들은 󰡐아랍어=이슬람󰡑이라는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랍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이 쓰는 표준 아랍어를 의도적으로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랍 기독교인들보다는 무슬림들이 표준 아랍어(문어체)를 더 잘 구사한다. 아랍어에는 두 종류(문어체와 구어체)가 있는데, 한국 내 아랍어과가 있는 대학들에서는 표준 아랍어만을 가르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여류 소설가 사하르 칼리이파는 󰡒아랍어는 성스러운 언어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소설에는 표준 아랍어와 구어체 아랍어를 섞어 쓰고 있다. 󰡒평범한 아랍 여성이 표준 아랍어로 말하는가? 구어체로 말하는가?󰡓라고 되묻고는 일상생활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그의 소설에는 구어체가 더 적합하다고 했다. 오늘날 아랍인들의 일상 언어는 구어체 아랍어이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아랍어 구어체를 먼저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



표준 아랍어의 혁혁한 공로자는 7세기의 꾸란이다. 곧 아랍어=이슬람이란 말은 표준 아랍어를 가리킨다. 이슬람이 7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하여 주변국가들을 점령하기 전에는 중동 여러 지역에 기독교 교회가 있었다. 8세기 이전에는 성경이 아랍어로 완역되지 못했지만 아람어나 히브리어 혹은 그리스어에서 알바어로 번역된 시편, 일부 예언서, 성경 이야기 그리고 복음서 일부와 바울 서신 일부가 있었다. 이때에 적지 않은 아랍 사상가들이 성경을 인용하거나 성경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가스 븐 사이다(600년, 예멘 나즈란의 주교), 와라까 븐 나우팔(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성경 일부를 아랍어로 번역하고 네스토리우스 교회의식을 아랍어화함.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활동), 와합 븐 무납비흐(654년, 유대교와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인용한 무슬림, 예멘의 싸나 태생), 이븐 꾸타이바(9세기,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아담, 노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인용한 무슬림, 이라크 쿠파 태생), 후나인 븐 이스학(809~877, 의사이자 철학가, 70인역 성경에서 일부를 아랍어로 번역한 기독교인,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된 성경을 아랍어로 번역), 싸아드 자디온(9~10세기, 유대인으로 이집트에 사는 유대인들을 위해 모세오경을 히브리어에서 아랍어로 번역함), 앗싸알의 자손들(12~13세기, 콥트어 성경을 아랍어로 번역하였고 번역분이 현재까지 존재) 등이 있다.



19세기는 아랍어 성경 번역의 황금기로서 반다이크 번역, 야쑤이야(Jesuit, 가톨릭 예수회) 번역 등이 있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기 전에는 아랍 문화 부흥의 중심지는 레바논이었는데,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과 예수회 선교부가 베이루트에 들어갔다. 이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많은 레바논 사람들이 이집트로 건너오면서 출판과 문화의 중심지가 이집트로 옮겨졌다. 콥트어가 문화와 종교의 언어로 쓰였던 이집트에 이슬람이 들어가고 나서, 10~11세기 사이에는 콥트 교회 대부분이 아랍어화되었다. 그래서 17~18세기에는 이집트에서 콥트어 대신 아랍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아랍 기독교인들은 현대 문예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이 해낸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는 서구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아랍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레바논의 기도교 학자는 나씨프 알야지지(1800~1871년), 파리스 알시드야끄(1805~1887년), 부뜨루스 알부스타니(1819~1883년), 이브라힘 알야지지(1847~1906년)등이 있었다. 1847년 나씨프 알야지지는 아랍어 성경 번역을 시작한 엘리 스미스와 협력하였는데 성서공회 창립 멤버였다. 파리스 알시드야끄는 1851년 캠프리지에 살던 사무엘 리(Samuel Lee)와 토마스 가르트(Thoomas Garth)의 도움으로 신약성경 번역을 마쳤는데, 1864년 반다이크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나은 번역본이었다.



부뜨루스 알부스타니는 1846년 엘리 스미스와 반다이크의 성경 번역을 도왔고, 반다이크 번역은 오늘날 아랍인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아랍어 성경 버역본이 되었다. 레바논의 근둥신학대 도서관에는 반다이크 코닐니어스가 번역한 1865년 원본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반다이크 번역이 문체와 어휘에서 선별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너무 문자 중심의 번역이라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브라힘 알야지지는 아버지 아씨프 알야지지의 도움과 부뜨루스 알부스타니의 협조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무슬림 학자들과도 좋은 유대 관계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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