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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07-29
 제목  <특집-주제강의 2> 미얀마 선교에 대한 도전
 주제어키워드  특집-주제강의 2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2471  추천수  6
미얀마 선교에 대한 도전



미얀마 선교의 초창기 단계

미얀마에서의 그리스도교 선교는 11세기이래 로마 카톨릭에 의해 시작되었다. 버마족 출신의 로마 카톨릭 사학자 바 킨(Ba Khin)은 파리 대학 출신의 의사였던 피터 본퍼(Peter Bonfer) 신부가 1555년부터 1558년까지 2년 반 동안 파테인(Pathein)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는 언어를 공부하면서 지역 거주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도와 활동은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겨졌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결국 1558년 그곳을 떠나고 만다. 수년 후, 정확히 1813년에 저드슨 선교사가 랭구운에 도착했다. 아드니람 저드슨과 그의 아내는 미얀마로 보내진 최초의 미국 침례교 선교사였다. 저드슨은 성경 번역, 성경의 인쇄와 보급, 설교, 종교 서적 발급, 원주민 아이들을 도회지로 진출시키기 위한 교육 등, 많은 일들을 하였다. 몇 년 동안(1820-1823년) 그리스도교인의 숫자가 늘어났고, 총 29명이 되었다. 그는 다른 부족에서 1848년까지 자신의 사역을 계속했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얀마 선교의 거대한 변화

이와 같은 일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선교의 거대한 변화는 미얀마 그리스도교의 전환점이 되었다. 모든 책임이 대책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 부과되었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야만 했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복음 전파 사업에 참여하였고, 몇몇은 나라 안의 다른 지방에 있는 성경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교회는 여러 해 동안 확연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미얀마 안에서 선교의 시도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우리는 오늘날의 미얀마 교회에 대하여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였다. 말하자면, 복음의 전파와 사회 개혁, 대중 복음집회 등등, 그리고 해방 운동, 소위 ꡒ사회복음ꡓ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이웃에게 접근하는 데 있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방법들

지금 필자는 필자가 현지에서 경험한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미얀마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단순한 예전적 형태 안에 전통과 카리스마를 결합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향하여 사랑과 섬김을 드러내도록 하고 있다. 몇몇 능력 있는 교회들은 궁핍한 자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조직하며, 대학원 졸업생을 선교 교사로 보냄으로써 작고 빈곤한 교회와 조직을 돕고 있다. 국립 학교에서 교사로 가르치는 일은 성교에 매우 유용하며 효과적이다. 정부가 지명한 교사는 정부가 제공하는 후원비가 부족하여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없다. 국립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매우 강경한 불교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또한 가정 교사 역시 복음 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종류의 활동들이야말로 사람들을 깊이 감동시킬 수 있으며, 파괴되고 비틀어진 세계에서의 희망의 표시가 된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의 모델은 무엇일까? 아마도, 덜레스(Dulles)의 견해대로, 그것은 제도적이고 선포적이고 예언자적인 섬김의 교회일 것이다.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살기

버마족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에이버리 덜레스(Avery Dulles)가 자신의 책 The Models of the Church, the Church as Institution, Mystical Communion, Sacrament, Herald and Servant에서 밝힌 내용에 동의한다.

특별히 버마의 교회는 보다 더욱 종으로서의 교회이다. 혹은 필자는 교회를 돌보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몇몇 능력 있는 교회들은 실험적인 사회 활동에 대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미얀마 내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집단 출신의 젊은이들과 여자들을 도울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공동체 스스로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기술과 도구를 마련하게 해준다. 이는 단지 그들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닌, 그들과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선교의 입장에서 평등과 정의를 위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더불어, 제도 교회와 부르주아가 점차적으로 자신들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 더 심각한 부당함과 궁극적인 몰락은 불가피해진다.



의식 계몽 운동

그러므로 보다 젊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몇몇 능력 있는 교회들을 통하여 사회 활동에 대한 지향성을 개발함으로써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계몽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만 한다. 미얀마 교회 협의회는 1914년에 세워졌고, 그 시작부터 두드러진 활동을 해왔다. 국내외의 다양한 충돌들로부터 비롯된 난민들로 인하여 재정착과 또 다른 두드러진 프로그램들이 사회 이슈로 부상하였다. 1960년대에 UN이 10개년 개발 사업에 착수하자, 우리 미얀마 교회 역시 이에 응답하였다. 우리에게 있어 이는 교회 사역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자 출발이었다.

우리는 상당히 떨어지고 고립된 지역들의 주민들에 대한 작은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그곳은 정부의 보호 정책이 저의 닿지 않는 곳이다―혹자는 아마도 그들이 이제 갓 석기시대를 벗어났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출발점에서 우리는 스무 개의 정착지를 골라 스무 명의 젊은이를 훈련시켜서 그들 중의 한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도록 했다.

소외된 공동체에서 일하고 살아간다는 아이디어의 배후에는 선교와 섬김의 마인드가 자리한다. 촌락의 주민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그곳으로 간 젊은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위임 혹은 그분을 위한 섬김의 마음가짐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그곳―충분한 음식도 없고, 전기와 TV와 어떠한 종류의 오락거리도 없는―에 가지 않는다. 몇몇 젊은이들은 너무나 어려운 일을 택하여 결국 포기하기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보건 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죽기까지 한다. 우리의 계획은 자급자족에 기초한다. 외부의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그 계획은 매우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해서 일하려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신발

많은 경로를 통해 외국인 선교사들이 떠나는 현상을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교회는 현지인화 되어야 할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외국 선교사들의 능력, 교육, 리더십에 의존해왔었다. 그들이 떠나게 되면 우리는 그들이 신던 신발을 신어야 했고, 조금씩 우리가 해야할 바를 배워왔다. 교회는 국가를 세우는 데 있어 정부와 신뢰감 있는 동반 관계를 수립해야만 한다.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경계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군부 통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보다 많이 배워야 한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성서에 등장하는 선교 명령 안에서, 교회의 활동은 곧 사회 활동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의를 구현하도록 요구한다. 다른 사람에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책임감의 결여는 곧 우리를 불의함으로 이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남들을 억압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인간 관계 속에서의 잘못된 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즉시 사람과 연대감의 부족으로 인해 불의한 사회구조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러한 구조가 우리를 억합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불의한 사회 구조가 단지 우리 자신에 의해 제도화 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덜레스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결정들이 지닌 중요성을 연구하면서, ꡒ세속적 대화ꡓ를 통해 현대 사회와 그리스도교 전통 사이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할 종의 형상이 만들어질 것임을 지적했다. 미얀마의 사람들은 억압을 받고 정부에 의해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며, 권력과 명예와 욕구가 모든 것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그들이 과연 ꡒ권력이 아닌 사랑으로 지배하기ꡓ를 배워온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자신의 종교와 더불어, 있는 바 그대로 자신의 인간적 면모까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새로운 도전들 그리고 전략들

외국 선교사들의 시대를 주의 깊게 평가한 후에, 이제 필자는 새로운 실천적 제안들과 함께 오늘날의 미얀마 선교에 대한 몇몇 새로운 전략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RC 선교와 침례교 선교 사역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를 통하여, 우리는 그들의 사역이 근대의 패턴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그 당시의 상황에 적절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가 서구를 통하여 미얀마로 전해졌기 때문에, 미얀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본래적인 설립자들의 철학과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변 공동체에 외국의 문물로서 비쳐졌다. 미얀마의 교회는 설립자의 본래적 패턴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와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고쳐야할 필요성 사이의 갈등에 직면해 있다. 왜냐하면 서구 세계의 상황 역시 근대에서 탈근대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교사들과 그들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근대 문화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바라보고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려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ꡒ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ꡓ라는 말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1596-1650)와 바룩 스피노자(1632-1677)와 같은 철학자들, 그리고 17-18세기 유럽의 또 다른 이성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철학은 모든 것을 이성에 비추어 판단하며,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부인한다.

이러한 이성주의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개인적 의식에 초점을 두며, 모든 인간 존재가 이성의 사유를 통해 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이러한 철학은 교육이야말로 여러 해답들 중의 하나이며, 여기에는 세계화의 과정을 통한 세계의 단일화가 포함된다고 결론내린다. 이러한 결론으로 인해 노예 매매와 식민지가 생겨났고, 거기서 우월하고 유리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을 짓밟는 주인이 되었다. RC와 침례교와 같이 미얀마에 왔던 많은 선교사들은 당시만 해도 미얀마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서구 문명에 따라 개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그리스도교 선교의 일환으로 교육, 과학, 병원을 제공함으로써 서구 이성주의에 일조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의 지역적 민족적 정체성은 축소되었다.

서구 근대 이론의 문제점은 그것이 인간과 사회변혁을 추구함에도 이를 실행할 원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론은 진리(개인)와 실천(사회)을 분리시켜버린다. 이로 인해 개인은 진리를 알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 대학, 교회를 위해 자신의 가족의 삶을 희생시킨다. 그는 그렇게 하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한다. 이는 지적인 전통에 기초한 서구 신학의 본질을 드러낸다. 따라서 목회적, 관계적, 경험적, 실천적이어야 할 선교 사역은 실패하게 된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은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서는 다원주의가 각광을 받으며, 소수가 지지를 얻으며, 문화적 다양성이 보호받고 배양된다. 이러한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변화는 선교의 문제에도 도전거리를 던진다: 전통의 수호이냐 아니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상황화이냐.

미얀마 교회들은 동일한 긴장에 보다 더욱 직면해 있다: 설립자들의 본래적인 패턴에 충실할 것이냐, 아니면 변화하는 상황에 타협할 것이냐. 지난 200년 동안 미얀마에서의 교회 성장은 서구 선교사들의 서구식 교육에도 불구하고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느린 비율을 보였다. 이는 곧 다른 문화를 무시했던 근대 철학의 실패이다.

서구 철학으로 훈련을 받은 그리스도의 일꾼들 역시 그러한 실패에 기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미얀마식 그리스도교로 묘사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스도교는 미얀마인들에게 그저 외국의 종교였다.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인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서구의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고 있다. 비록 우리가 상황화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실전에서 심각한 실패를 경험한다. 미얀마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일은 근대 및 개인중심주의로부터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진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미얀마 교회는 미얀마 문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해 지지받고 도전받는 경우를 철저히 검토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미얀마 교회는 예수와 미얀마 문화를 관계지을 수 있으며 미얀마 사회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교와 미얀마가 문화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해, 신학교와 복음 선교사들을 포함한 미얀마 교회는 다음의 내부적 장애물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1. 교회는 자신, 불신자, 초월적 성령, 회개에 대한 편견과 같은 스스로의 태도를 다시금 검토해야만 한다.

2. 교회는 다양한 문화, 언어, 가치체계를 존중심을 가지고 기꺼이 경청하고 배워야만 한다. 교회는 타자를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아야만 하며, 영적 우월감을 배제한 채 타자를 존중해야만 한다.

3. 교회는 자신의 시간, 에너지, 돈을 기꺼이 희생하야만 하며, 단지 복음전파를 위해서만 관계를 맺는 일은 삼가야 한다.

4. 교회는 복음의 참되게 지닌 자로서 삶의 모든 측면에서 불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 가령, 교회는 가족을 잘 돌보고 소수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곳으로 알려져야만 한다.



결국 미얀마 문화와 관계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공해야만 한다:

1. 교회는 불신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주어진 상황과 위치의 맥락에 적절한 방법과 전략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2. 교회는 계층, 지위, 성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줘야 한다. 가령 예배 프로그램, 특별 활동, 신학교육 프로그램은 문화적 관련성을 가지고 촉진되어야 하며 외래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해서는 안 된다.

3. 교회는 그리스도를 밝히 드러내는 데 있어 신중해야만 한다. 보다 문화적으로 관련된 교회를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는 신인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4. 예수께서는 각각의 사람들과 문화에 적합한 진술, 이야기, 이미지, 용어로 표현하시면서 그들 고유의 문학으로 복음을 전하셨음에 틀림없다.

5. 교회는 새신자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하며, 또한 그들에게 복음전파를 인식시켜 그들이 다른 불신자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6. 교회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성육신적 선교를 실행하도록 가르쳐서 가난한 자들과 주변 공동체를 위한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과 사회 사업 등을 통해 사회 변화에 일조해야만 한다.



선행을 통한 선교는 효과적인 복음 전도와 불교 공동체의 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또한 선교에 초점을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ꡒ선교는 교회의 일부가 행하는 특별한 기능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 전체의 활동이다. 교회는 모든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관심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선교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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