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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4-07-29
 제목  <특집-주제강의 1> 아시아인의 견지에서 본 선교의 전략적 이슈
 주제어키워드  특집-주제강의 1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380  추천수  10
아시아인의 견지에서 본 선교의 전략적 이슈



약 37억의 인구 가운데 9% 미만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인 아시아에 명백히 복음은 필요하다. 복음전파에 관하여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는것,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무엇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대하여 여기에 몇 가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시아 선교에 영향을 주는 트랜드와 이슈들



첫째, 현대 역사에서 볼 때 1980년대에 들어서 비서구의 기독교인 숫자는 처음으로 서구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게 되었다. 데이빗 버렛(David Barrett)에 따르면 서기 2000년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기독교인 숫자는 대략 7억5천 만 명(39%)이다. 이와 비교해서 비서구 세계의 기독교 인구는 11억 6천 2백 만 명이다. 교회의 무게 중심이 서구에서 비서구세계로 이전한 것은 단순히 인구통계학적인 부분만은 아니다. 이는 동시에 비서구 기독교의 생명력과 영향력의 증가를 의미하고 있다.

둘째, 오늘날의 세계가 어떻게 재형성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책 ꡐ문명의 충돌ꡑ에서 탈냉전시대에 근본주의의 재결합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탈냉전시대의 충돌은 주로 그가 크게 여덟 개로 나눈 문명들 간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서구권, 정교권 혹은 슬라브 민족권, 라틴 아메리카권, 유교권, 이슬람권, 힌두권, 일본권, 아프리카권이다. 헌팅턴의 이론은 9․11 테러사건 이후 헌팅턴의 이론의 회의론자들도 어느 정도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사고와 행동의 문명적 양식이 앞으로 오는 수 십 년 동안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선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다섯 가지의 제안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트랜드들과 이슈들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필자가 보건데 우리는 선교의 문제에 있어서 다섯 가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

i. 토착교회에 권한부여

첫째로,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토착교회에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이들 토착교회들이 진정으로 독립하여 사역할 수 있도록 하여 지구촌 기독 공동체에서 동등한 파트너로서 위치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먼저, 비서구 교회들에게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효과적인 성장을 돕는다는 것은 세계선교를 진전시키는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 하는 것은 선교에 있어서 간섭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ii. 토착교회의 지도자들의 제자도와 성품의 이슈에 대해 도전

이것은 우리를 두 번째 문제로 안내해준다. 토착교회들의 성장과 성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진실한 기독교적 헌신과 성품이다.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교회들이 지도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도자가 부족하다. 한국교회는 아시아에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가장 역동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조차 종종 복음의 원리들이 제자리 잡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실패는 지도자에게서 시작된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보다 오늘날 아시아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며 기독교적 성품을 나타내는 능력 있는 지도자들일 것이다. 아시아 기독교인들은 서구의 교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서구교회에서도 교회지도자들의 스캔들을 통해 볼 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과 거룩함의 부족이 발견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으로의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구의 전통 가운데 세대를 걸쳐서 훈련된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헌신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iii. 전인적 복음

세번째 문제는 전인적 복음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앞서서 우리는 서구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원론이 불완전한 복음을 양산했던 것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어거스틴 이후로부터 서구의 신학이 개인화와 영화(Spiritualization)가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ꡐ구원을 하나의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하고 세상을 간과하는 서구기독교의 경향은 현실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를 양산할 수 밖에 없다.ꡑ 이것은 특히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 2차 로잔 대회(1989)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복음주의 기독교의 약점이다. 이때의 주제로 삼았던 부분은 ꡐ전 세계를 위한 온전한 복음ꡑ 이었다. 전인적인 복음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사고에서 헬라의 이원론을 제거해야한다. 프란시스 쉐퍼가 말했던 것처럼 ꡐ진정한 기독교는 관념적인 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상당부분 관념적인 사고를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 육체는 나쁜 것이고 멸시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은 구원을 알아야 하며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알아야 한다ꡑ고 말하고 있다. 성경적인 기독교에서 복음은 모든 인간의 필요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전인적이다.

iv. 복음의 상황화

넷째로, 복음의 선포와 믿음의 실천의 상황화에 대한 순전한 노력이 없고는 기독교는 여전히 서구의 종교로 남을 것이다. 상황화의 문제는 계속해서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 기독교의 많은 부분이 서구의 영향력에 아래에 있다. 이러한 영향력은 서울 중심가의 고딕양식의 성당들과, 미국의 ꡐ천사들ꡑ처럼 옷차림을 하고 탬버린으로 춤추며 찬양하는 말레이시아의 지방의 교회의 성도들과 계몽주의 합리론에 뿌리는 둔 방법론과 서양의 교과과정으로 이루어진 신학교의 강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1920년대의 반 기독교적 지성들의 외쳤던 ꡐ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면 중국인들이 줄어든다!ꡑ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인도의 기독교인중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썬다 씽(Sadhu Sundar Singh) 의 조언을 무시하고 있다. 그는 인도인들은 ꡐ생수ꡑ가 필요하다 하지만 ꡐ그들은 생수를 유럽식의 그릇에는 원하지 않는다ꡑ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다가오는 세대에 문명의 충돌이 증가한다는 헌팅턴의 이론이 옳다면 상황화의 이슈는 정말로 시급하고도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문화적인 용어들을 고려한다는 것은 상황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상황화의 상세한 부분까지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몇몇 사례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찬송, 예배, 전도, 목회 방법, 건축등과 같은 교회의 일상에 대한 관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 선교 접근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문화적이며 문명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에 관한 좋은 사례를 한 서구 선교단체가 채택한 방법론에서 볼 수 있다. 그 선교단체의 대표 중 한사람이 선교단체가 홍콩에 선교사 훈련 대학을 세우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홍콩에 훈련 대학을 세우는가? 그의 답변은 그들 선교단체가 무슬림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하였다는 것이다. 서양과 이슬람 문명과의 수천 년에 걸친 갈등의 돌파구가 서양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아시아는 선교의 네 가지 영역인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 문화와 세계관들에 도전에 대한 변증론, 신학, 윤리학적 논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우리가 이 과제를 풀어나가지 않는다면 복음전도의 돌파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과거 로잔회의의 국제 책임자였던 톰 휴스턴(Tom Huston)은 ꡐ활동하고 있는 교회의 동역화 - 총체적 충돌: 총체적 복음(Mobilizing a Church on the Move - Global Clashes : Global Gospel.)ꡑ라는 논문에서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휴스턴은 헌팅턴의 이론에 대하여 선교학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교회가 보편적이 된 이유는 단순히 여기저기의 믿는 개개인들이나 혹은 일단의 믿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전체 문명이 기독교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만일 헌팅턴이 말한 문명에 대한 자각(civilizational consciousness)이 지배적인 것이 될 것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전체 문명을 전도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서구의 복음을 계속해서 선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문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족들에게 문화적으로 적합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ꡐ이들만이 전도를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는 사람들이다.ꡑ

v. 서구와 비서구 교회들 사이에 진정한 협력관계의 발전

마지막 안건은 오래된 서구의 교회들과 젊은 비서구 교회들 간에 진정한 협력관계의 발전의 필요성이다. 현재적으로 교회성장의 중심은 주로 비서구 세계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권한의 중심은 현재적으로 서구 세계에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교단과 조직, 선교단체, 출판사, 신학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정과 같은 부분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전 세계적인 교회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상당부분 왜곡시킬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사역하는 방식도 왜곡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전 세계적인 교회들 모임과 선교적인 대회들에서 서구 세계의 참석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서구인들이 핵심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최근 비서구 교회들의 성장은 주로 토착민들과 토착 지도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서구 세계의 간섭은 다른 모습으로 지속된다. 이것은 종종 이러한 일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 주요 국제 조직에서 중요한 선교 대회를 계획할 때 이 조직은 참석자들의 대다수가 비 서구 세계에서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대회의 팜플렛을 보면 거의 모든 조직 위원회 구성원들이 서구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임들의 참가비는 돈이 있는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된다. 이는 참석자들, 안건, 관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결론들까지도 대게 서구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전 세계적인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여전히 눈먼 사람으로 남아 있고 우리의 활동도 유행에 뒤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다.

적절하게 협력관계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전체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재정과 훈련을 담당하는 인력에 관하여 무엇을 어떻게 서구 교회가 비서구 교회의 부족한 자원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동시에, 어떻게 이것을 한편에서는 의존하려고 하는 성향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교사의 영속적 관리의 문제를 야기 시키지 않고 진행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비서구 교회들의 리더십을 높은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것에 관하여 우리는 존 스토트의 사역 즉 Langham Trust of Training(존 스토트가 주도하고 있는 사역으로 서구 교회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의 교회들을 돕는 일환으로 이들 지역의 목회자를 돕고 서적을 출판하며 장학금을 제공하는 사역이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전통적으로 서구의 관리 하에 있는 국제적 단체들이 감히 비서구인들과 완전히 진정한 상호관계의 기초 하에 그들의 지도력을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우리는 유익이 단지 한 방법으로만 흘러온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비서구 세계에서 선교사들(단순히 이주민이 아닌)이 정체한 서구 교회들을 소생시킬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1998년 람베스(Lambeth)의 사례가 비서구 교회들이 탈 기독교적 환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리적이고 도덕적인 쟁점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비서구기독교의 통찰력이 헬라의 이원론, 계몽주의적 합리성, 문화적 편견의 서구기독교의 생각을 조금 더 성경적 방향으로 재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지금과 같은 국제화된 세계에서 편협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선교세계에서 확실히 그 효과가 사라졌다. 더욱이 지상과업은 어떤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다. 앞으로 발전하는 방법으로 서구와 비서구 교회들과 물질적 혹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순전한 기독교적 협력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문제의 핵심은 한편으로 어떻게 서구교회의 엄청난 자원과 또 다른 한편인 비서구교회의 생명력과 역동성이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하나의 결집된 능력으로 융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우리가 21세기가 실제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진을 위한 ꡐ위대한 세기ꡑ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이 문제가 우리의 논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너무나 작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전 세계적인 선교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이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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