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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선교정보기타  작성일  2004-06-26
 제목  “선교적 확신을 준 곳 말레이시아
 주제어키워드  “선교적 확신을 준 곳 말레이시아  국가  Malaysia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5337  추천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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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확신을 준 곳 말레이시아”

김 진 구 목 사



금번에 네 번째 선교 훈련이어서 최소한 이번에는 청년들에게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선교공연을 본인들이 알아서 연습을 했다. 준비물들도 선교훈련 준비 임원들이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 마음이 뿌듯했다.

“인제 이 훈련도 정착이 되는구나! ”



떠나는 날 모두 말라리아 약을 먹고 버스에 승차, 목사님과 배웅 나오신 성도님들의 흔드는

손을 보며 출발했다. 4시간 30여분이 걸려서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했다. 비행시간이 7시간이라는데 나에게는 지금까지 타본 비행시간 중에 제일 긴 시간이었다. 잠을 자고 싶은데도 뒷 칸이어서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엎치락 뒷치락 하는 가운데 쿠알라룸푸르에 도착, 전에 홍콩에서 타본 트랩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다가온 말레이시아 땅 기대와는 사뭇 달리 참 잘사는 곳으로 첫인상이 되었다. 공항도 참 깔끔해 보였고, 도시도 한적함 뿐 아니라 조용한 곳이었다. 마중 나온 선교사님과 가이드와의 미팅이 있은 후 숙소로 출발, 2인 1실로 배정 늦게 도착한 터라 모두 잠을 청했다. 왜냐하면 다음날 바로 원주민 마을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날씨는 무척 좋았다. 드디어 버스에 모두가 승차하고서 출발했다. 가면서 보이는 이 땅의 대표적인 오일 팜 나무와 고무나무들을 보면서 대단한 자원과 잠재력을 가진 나라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중간 지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중국식당에서 처음 대하는 음식 그러나 매우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두 번째 나온 국수같이 생긴 음식들 우리 테이블은 그래도 잘먹은 것 같은데 다른 테이블은 별로 입에 안 맞은 지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중이 안 일이지만 선교사님께서 그일 때문에 저희 팀이 이 곳 원주민 음식에 힘들 것 같아서 원래 손님이 오면 이구아나나 아나콘다 등 과 같은 짐승들을 사냥해와 잡는데, 원주민들에게 그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드디어 출발지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약속한 트럭이 안온 것이다. 할 수없이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TV에서만 보았던 정글, 길 양쪽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와 숲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그 뜨거운 기운과 포장되지 않은 길, 언덕과 내리막길을 수십 번 반복, 우리는 이들과 싸우며 나가야 했다.



약 1시간 10여분 도보 끝에 중간 기착지인 마을에 도착 마을에서 준비한 시원한 야자수로 더위를 식히고 그 곳 아이들과 원주민들과의 즐거운 게임 및 찬양 시간으로 우리의 선교여행의 시작을 그렇게 열었다. 그러고 나서인지 한결 나아진 기분을 가지고 다시 이동 똑같은 상황을 가지고 다시 걷기 시작해 드디어 orang Asli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이 참으로 평화롭게 보였다. 바나나 나무와 야자수 나무와 어우러진 마을, 교회도 보이고, 마을 중앙에는 이 나라에서 주로 하는 운동인 세팍타클, 마을 옆으로 냇물이 흐르고 참으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그 날 저녁은 이 마을 추장 댁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그들의 따뜻한 온정이 전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녁을 함께 하고서 마을 사람들과 저희들이 함께 교회에 모여 저희들이 준비한 선교공연과 말씀을 선포했다. 새까만 얼굴에 빛나는 어린이들의 눈동자들, 찬양을 할 때면 우렁찬 소리, 그 날 밤은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밤이었다. 칠 흙 같은 어두움 속에서 온 정글을 울리는 찬양소리와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 참으로 이곳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은 크다라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며 감동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가랑비가 조금씩 내렸다. 트럭은 그 때 까지도 안 왔다. 출발하기 전 큐티를 하고 짐들을 모두다 챙기고 비가 와서 한국에서 준비한 우비들을 입고 나서려고 하는데 다행히도 트럭이 왔다. 태어나서 그런 트럭은 처음 봤다. 운전석 앞 유리가 없을 뿐 아니라 문도 안 열려서 유리가 없는 그 앞으로 사람이 타는 것이었다. 그래도 서운 한대로 그 차를 탈 수밖에, 트럭을 다 못타니까 몇 사람은 오토바이로 이동, 나머지는 트럭에 탔다. 그런데 비가오고 아직 마르지 않은 미끄러운 곳이어서 얼마 못가 트럭이 헛 바퀴만 돌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여자들하고 남자 두 세명만 트럭에 타고 나머지는 걸어야 했다. 남아있는 남자들 나를 비롯, 여섯명이 어제와 똑같이 걸었다. 걸어가는데 어제보다 길이 더 험했다. 언덕의 가파름과 빠른 굴곡 처음에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었는데, 갈수록 포기하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정길이와 광은이 이들을 함께 데리고 가야기에 나는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다. 앞에서 가던 현돈이와 정이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렇게 힘든 고투의 시간이 2시간 가까이 되었을 때 우리 여섯명을 태우기 위해 오토바이들이 왔고, 우리들을 실어 트럭이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문제는 뒤에서 걸어온 우리들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 트럭을 탔던 여자들이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길이 안 좋은데다 트럭이 그렇고 그래서 내려 자주 밀어야 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태어나서 그렇게 힘을 써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여자들은 트럭을 타고 나머지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우리가 가야할 마을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곳에서 거의 모두가 의약품으로 알고있는 라면상자를 뜯어 컵라면으로 고생한 것들을 위로했다.

그 마을에서도 한번의 사물놀이로 함께 한 후에 다시 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지금까지 넓었던 길은 없고 좁은 길, 질퍽한 땅, 중간 중간 흐르는 계곡물 어쨌든 산행을 한지 1시간 넘게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쯤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도 감사했다 도중에 비가 오지 않고 우리가 도착해서 그래가지고 다행이었다. 여전히 대나무로 지은 집 우리 팀은 짐을 풀고 두 명씩 그 전 마을에서처럼 배정된 집에서 이틀을 유숙해야 했다. 그 날 저녁은 좀 늦게 교회에서 공동식사를 했다. 우리 팀이 준비한 쌀과 기타 찬 재료들을 가지고 각 집에서 음식을 해 가지고 왔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나는 산나물들도 가지고 왔다. 초대교회가 따로 없었다. 수저가 없어도 우리 팀원들도 마치 이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손을 가지고 식사를 했다. 참으로 맛있고 기쁨의 식사였다. 이곳에서는 쌀을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수입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굶는 게 일쑤라고 한다. 한마디로 저희들이 가서 쌀 구경을 한 것이다. 그러기에 마을 축제일 수밖에...



우리는 이틀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함께 했다. 축구와 게임, 수영 함께 하는 도구가 되었다. 세면은 냇가에서 했다. 화장실은 없었다. 그냥 자연 속에 살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었다. 소변, 대변 모두가 그랬다. 낮에는 그들의 전통 분장을 위해 야자수가지로 여러 가지 것을 만들어 주었다. 저녁에는 또 공동식사, 그리고 나서 선교공연을 했다. 찬양과 간증, 설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대체 몇 시인지, 무슨 요일인지 그렇게 지냈다. 떠나오기 전 마지막날 밤 그들은 우리를 못 자게 만들었다. 밤새껏 찬양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었다. 쉬고 싶어하는 얼굴들이 팀원들에게서 역력했다. 겨우 선교사님의 만류로 늦게나마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후회했다. 얼마나 헤어지기 싫었으면,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정서이며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인 것이다. 밤새 찬양하고 또 약을 나누어주고 함께 얘들과 뛰놀며 수영하는 선교사님의 얼굴에서 나는 이것이 바로 선교다 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성육신적 선교 바로 그 선교적 삶을 선교사님은 실천하고 계셨다.



평소에도 나는 그런 선교를 생각해 왔다. 그리고 신대원 시절 선교사로 꿈꾸면서 주님께서 나를 어느 곳에 선교사로 부르시는가? 그리고 언제 부르실까? 늘 고민하며 살아왔었다. 그리고 선교사로 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주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그런 고민을 말끔히 씻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들은 다음날 새벽에 그들의 뜨거운 환송 속에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새벽공기를 가르며 마을을 떠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왔다. 여전히 말썽인 트럭,(명규, 병진, 최범식 집사님, 선교사님, 생오이족 청년, 그리고 나, 끝에까지 남아 트럭을 다시 밀어야 하는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헛(?)바퀴 때문에 튀긴 진흙 아직도 내 바지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결국 우리는 30대 가까운 오토바이 행렬을 하며 처음 출발했던 그곳에 도착 버스에 승차할 수 있었다. 순수한 그들의 얼굴, 그들의 마음, 먼 거리까지 짐을 날아준 체로 마을 꼬멩이들,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 주님 감사합니다.



금번 네 번째 선교훈련이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와 생각들, 비전, 꿈을 갖게 했다. 우리팀원들, 그리고 박 선교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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