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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작성일  2000-11-04
 제목  <특집> 기고2- 선교단체와 기독교 NGO의 연합
 주제어키워드  선교와 NGO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169  추천수  7
들어가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 기독교계가 이라크에 쏟아 부은 사랑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긴급구호사역이 어느 정도 마감되고 보다 장기적인 후속 사역이 준비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사역과 앞으로의 전략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에 눈에 띄게 드러나는 특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선교단체와 NGO간의 협력”이다.

중동선교회(MET)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의 협력

훌륭하게 협력사역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었으나, 부족하지만 필자가 섬기는 중동선교회의 예를 잠깐 들도록 하겠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바그다드 함락 직후 이라크 긴급구호사역이 시작될 즈음, 현지에 있는 몇 몇 선교사들로부터 “보다 원활한 이라크 사역을 위해 선교회를 NGO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는 조심스러운 건의가 한국본부로 접수되었다. 그러나 한국 본부는 현 상황에서 기존의 NGO와 협력사역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바로 그 때 선교회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로부터 이라크 사역을 위한 지원 요청을 받았고 이에 기꺼이 협력하기로 결정하였다. 중동선교회는 현지 선교사들의 man power가 있고 기아대책기구는 긴급의료팀, 구호물자 등의 자원과 구호사역의 know-how가 있으니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협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긴급구호사역을 마친 지금, 중동선교회와 기아대책기구는 이라크에 “바그다드 복음주의 신학교(Baghdad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가칭)를 세우는 일에 연합하여 용왕매진하고 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지금, 본부장 선교사인 정형남 목사는 이라크 5개 교회 지도자들과 협약을 맺기 위해 이라크에 가 있다. 8월 25일, 한국 후원이사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선교단체, NGO의 협력사역의 필요성

이미 오래 전부터 선교단체들은 창의적 접근지역, 특히 이슬람권의 선교를 위해서는 NGO가 전략적 도구로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일부 앞서가는 단체들은 이미 NGO로도 등록하여 훌륭히 사역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교단체가 반드시 NGO를 둘 필요는 없다. 두 조직의 사역 방향과 실무의 차이는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준비와 시행착오 없이는 선교단체가 NGO의 역할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교단체가 기존의 NGO와 뜻하지 않는 경쟁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과 달란트대로 각자의 전문분야를 섬기면서 함께 연합하여 동역함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2)

기능적 협력? 사상적 연합!

지금까지 선교단체의 입장에서 NGO와의 협력의 필요성을 약술하고 간략하게 예를 들었는데 자칫 지금까지의 논의를 잘못 이해하면 마치 두 조직이 서로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기능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단지 기능적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정신, 사상적 바탕에까지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단체는 단순히 접촉점 내지 사역적 돌파, 또한 보안을 위하여 NGO를 이용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1974년에 John Stott가 초안 작성하여 발표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은 「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략)...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중략)...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중략)...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중략)...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중략)...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후략)“ 3)

또한 1989년에 선포된 마닐라 선언문(The Manila Manifesto)은 「4.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전략)...참된 선교를 위해서는 겸허하게 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사회적 현실, 비애와 고통, 그리고 압제 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후략)”4)

물론 선교의 개념 정의에 대한 시각차이는 있다. 이태웅 박사는 최근 전통적 의미의 선교활동이 저조해진 이유 중 하나로 John Stott의 로잔언약을 들면서 다소 부정적으로 분석하고 있기까지 하다.5)

그러나 선교의 범위를 협소한 전통적 정의만으로 한정짓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 중 Religious Mandate만 강조하고 Cultural Mandate를 등한시하는 오류이다. 이사야 61장을 비롯한 성경전반에 나타나는 선교적 진술의 내용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지상대명령(마 28:18-20)에도 어긋난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는데 그 “분부한 모든 것”은 좁은 의미의 복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마지막 호흡을 다하시기까지 모범을 보이신 모든 섬김과 가르침, 심지어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사역까지도6) 포함하는 것이다. 이사야 59장에는 “온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불의를 향해 그리스도인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7)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8)

하나님께서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말씀하신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악의 구조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을 원하고 계신다. 그러한 사람이 없는 상태를 매우 당황해하신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인식, 실천하고 있었으며, 9)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역시 그러했다.10)

기독교가 퍼진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 개혁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많은 열매를 얻었다는 사실은 케네스 라토렛 같은 저명한 기독교 역사가는 물론, 세속적 역사가들까지도 공히 기록하고 있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전국 복음주의자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산하 국제 지원부인 「세계 구제 법인(World Relief Corporation)」은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다음과 같이 다소 흥미롭게 해석하면서 기독교가 인류의 실질적 필요를 채우는 일에도 본질적 가치를 부여하고 노력해야할 것을 권고한다. 11)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 고질적 영양실조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식량공급사역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 물이 없거나 오염된 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수자원 개발 및 정화사역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집을 잃고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들에 대한 사역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 인재 및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역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 간단한 예방주사조차 맞지 못해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역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고 목숨을 잃는 성도들에 대한 사역

절박하게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절대적 빈곤과 질병, 사회 구조적 불의와 착취에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이라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닌 현실을 놓고 볼 때, 우리의 선교사역의 지평은 당연히 넓혀져야 할 것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30%가 매춘, 마약, 인신매매, 노동착취 등의 악의 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현실에도 선교사와 선교단체는 적극적으로, 조직적으로 저항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룩하고자 하는 낙관적 인간론에 의존하는 자세로서가 아니라, 오직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정념과 슬픔에 같이 고통을 당하는 자세로 - 비록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비관적 한계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 인간 세계, 나아가 모든 피조 세계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창조 섭리들이 드러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선교단체가 NGO를 조직하거나 기존의 NGO와 협력할 때에는 사상적 지평의 확장과 연합이 단순 기능적 필요에 의한 협력 행위보다 선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성경적 근거와 선교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뜨내기 선교사 후보생인 필자가 건방지게 떠들어댔지만, 이미 많은 선교사들과 단체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피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community development를 위해, 악의 구조와 싸우기 위해 불꽃으로 타오르는 심지처럼 땀흘리고 있다. 온 맘으로 그들에게 성원과 존경을 보낼 뿐이다. 우리 모두의 정직한 땀을 통하여 맺어지는 기쁨의 열매들을 뭇사람들이 먹으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해본다.



1)중동선교회 간사, 연세대와 총신신대원을 졸업했으며 선교지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2)NGO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규모도 다양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경우에 따라서” 기존 NGO와 협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고, 직접 NGO를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3)조종남 편저, 로잔 세계 복음화 운동의 역사와 정신(서울:IVP, 1990),

pp.55-57에서 재인용.

4) Ibid., p.78에서 재인용.

5)“복음주의 선교운동에 있어서 회심이 약화된 이유 : 1. 1974년 세계 복

음화를 위한 로잔 국제대회 - 복음주의 진영에서 회심을 강조하는 데

서 벗어나게 하는 선교신학 형성은 바로 로잔대회에서부터 시작되었

다.” 이태웅, “선교와 회심”(선교연구 30호)(서울:GMTC, 1995)

6)쉐일러 매튜스, 예수운동과 혁명(박현덕 역)(서울:대장간, 1991) 참조.

7)월드런 스콧트, 사회 정의와 세계선교를 향한 제자도(강선규 역)(서울:

두란노, 1988), p.237.

8)개역성경은 단지 “이상히 여기다”라고 표현하였으나, 히브리어로는

“놀라다, 당황하다”라는 뜻이며, NIV는 “appalled”(소름끼치도록 섬뜩

한)라고 표현하여 개역성경보다는 원의미를 더 잘 살리고 있다.

9)월드런 스콧트, op. cit., pp.14-17 참조.

10)랄프 윈터, 스티븐 호돈 공동편저,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정옥배 역)(서울:예수전도단, 2000), pp.308-311 참조.

11)Ibid., pp.382-38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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