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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6-29
 제목  <북한선교1> 북한선교의 성경적 근거
 주제어키워드  북한선교의 성경적 근거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4545  추천수  3
북한선교1/



북한선교의 성경적 근거



조기연 교육부장(한기총 통일선교대학)





성경적인 관점에서 북한선교는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출발되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통일’은 단순한 남북의 지리적 통일의 좁은 시각이 아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분단된 상태에서의 회복’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통일염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의 통일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 전체가 통일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과의 분단 상태에 있는 인간을 찾아 회복시키시는 구속사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북한선교의 근거를 신·구약 성경 안에서 찾되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과의 분단된 상태에서의 회복’이라는 의미로서의 통일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구약의 성경적 근거



구약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상당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약소국가로서 많은 외침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과 민족성을 보존하였고, 민족 분단과 민족 통일의 경험을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후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로 분단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주변의 이방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과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는 자연스럽게 모두가 통일왕국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일의 공감대는 다윗에 와서 남쪽 유대가 북쪽 이스라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B.C.1004 - B.C.971)

다윗은 때로 죄를 범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또한 왕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는 그의 치세 기간 동안에 우상숭배로 인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가 죄를 범하였을 때는 나단 선지자의 꾸지람을 겸손히 받아들여 하나님과의 단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 회개의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이 통치하는 동안의 이스라엘에게 영적, 군사적, 정치적 번영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여호와를 그의 통치의 중심에 두고 순종하였을 때 통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솔로몬의 통치하에서 통일 이스라엘은 그 영토와 영화에 있어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시작은 여호와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지혜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 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하였으며, 솔로몬 제국은 애굽 지경으로부터 바벨론 지경에 이르기까지 넓은 땅을 소유하고 평화를 향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재물로 금지된 것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그의 부귀는 분쟁의 원천이 되었고, 불경건한 결혼은 결국 그를 우상숭배로 이끌고 갔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여호와의 마음을 돌이키게 했고 솔로몬은 하나님에게서 단절되었다. 결과적으로 왕이 두 마음을 품어 나라도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대 두 나라로 갈라져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어진 것이다.(B.C.931)

이렇게 통일왕국이 분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왕국은 모두 불순종과 우상 숭배, 불경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B.C.722), 유대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B.C.586)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확인해 주듯이 통일왕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할 때 주어지는 축복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반하여 통일 이스라엘의 분단의 고통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우상숭배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단되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국교회의 상황을 대비시켜 보자

다행스럽게도 분단된 상태에서의 한국교회는 불신앙과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세계가 놀랄만한 교회로 성장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직도 불신앙과 김일성 우상숭배에서 헤매고 있는 북한동포를 향하여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외쳐야 하는 것이 한국교회에게 주어진 대(大) 사명인 것이다.

통일에 대해서 남북한 정부 주민의 대부분이 수긍하고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그러나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남반부 인민의 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남한의 경우 ‘국토 분단과 민족분열에 따른 고통 및 불이익의 해소’라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이나 남한의 현실주의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의 회복,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통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미가 선지자의 고백처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미가서 4:3)”, “공법이 물 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아모스 5:24)” 진정한 통일한국, 복음 한반도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의 성경적 근거



신약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형틀이었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상징’이 되어지며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태초에 창조된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단절되는 비극을 자초했다. 또한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임으로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상실했다. 인간은 단 2대 만에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모두 파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모두 회복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바로 이웃과의 관계 회복의 열쇠인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20절의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는 만유 안에서 분리된 것들을 하나되게 하는 분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의 통일의 열쇠는 원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에서 출발되어져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의 활성화를 통하여 통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통일 개념의 극치를 이루는 것은 에베소서 2장 14-18절의 말씀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 14-18)”

앞의 본문에 나오는 “중간에 막힌 담”이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을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대결 구도 이상으로,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통일, 그리고 화평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원래의 모습인 피조물의 위치를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인간들과도 화평하게 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십자가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장벽도 허물어 둘이 하나가 되어 화평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한국교회 통일운동이 나갈 초점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의 회복 및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성경의 구약과 신약은 통일과 북한선교의 당위성을 말씀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인은 통일을 논할 때,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 즉, 기독교 세계관 및 역사관에 기초하여 남북한의 분단 및 통일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남북한의 분단과 그로 인한 고통은 한민족의 불신앙과 우상숭배 등의 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통일은 이러한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한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면서 동시에 점진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정신에 입각하여 한반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둘로 나뉘어진 남북을 한 체제의 한 나라, 혹은 두 체제의 한 나라로 묶는 외형적인 통일이나, 심화되어가고 있는 민족의 이질화를 다시 동질화로 회복하는 민족적인 차원만의 통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통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므로 맹목적 통일 지상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부합하는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혹자는 통일의 절박성과 간절함 때문에 통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에 빠지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통일운동의 현주소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먼저 잘려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사단의 세력권 안에 놓여진 북한에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초점이 맞추어지고 통일운동이 진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언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복음 통일 운동의 시작과 실습의 대상이 바로 탈북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선교는 북한 선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교회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1500여 명의 탈북자들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선교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이들에 대한 선교의 긴박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단순한 재정지원 이상의 구체적인 선교운동을 실천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탈북자의 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바로 북한 복음 통일의 시작이며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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