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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6-01
 제목  <주님의 사도들>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칼 헨리
 주제어키워드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칼 헨리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5031  추천수  6
주님의 사도들/



미국의 복음주의 지도자, 칼 헨리



편집부



TV 조명이 연단을 비추었다. 그러자 온화한 얼굴을 가진 한 키 큰 신사가 마이크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방금 약 5백 명의 신학교수들과 신학생들 앞에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복음주의의 대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된 칼 헨리 박사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로 복음주의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왔다. 그의 의견은 들을 가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 속에 직접 참여했었기 때문이다.

1991년, 80회 생일을 맞았을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문화적 조류 분석과 각 신학적 입장의 장점과 단점들을 검토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와 사회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의 권위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해외에서 문자 그대로 수백 회의 연설과 수십 번의 회견, 그리고 수십 만 자의 글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 왔으며, 현재도 여전히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진리를 변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언론사들은 그를 소개할 때, “지성인들을 위한 빌리 그래함”이라는 말을 붙여서 그가 미국 복음주의의 소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임을 인정해왔다. 사실, 20세기 후반의 복음주의 운동사를 회고해 볼 때, 우리는 그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칼 헨리의 위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913년 뉴욕에서 출생한 헨리는 식탁에서의 어머니의 짧은 기도 외에는 감사기도도 없고 집에 성경책 한 권도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음주문제로 고민해 왔으며 금주법이 발효되던 시절에는 부엌에 술을 만들기 위한 조그만 증류제조기를 두기도 했다. 회심하기 전인 20세 이전의 삶에 대해서 그는, “나는 관능에 따라, 그리고 본능과 생각이 시키는대로 내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다. 1987년의 한 인터뷰에서, “1993년 6월 이후로 그리스도께서는 결정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살아계신 실체가 되어주셨다. 그것은 황홀한 체험이었다. 나는 그분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는 살아계신다. 그는 다시 살아나신 분이다. 나는 내가 아무리 절박한 삶의 위기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헨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중요한 지식을 타인들과 나누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방식을 통해 그의 구주에 대해 말하고 전하기 위한 적절한 기회를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지금까지 전도자로서 살아왔다. 그리스도인의 회심은 초자연적으로 삶을 변화시킨다는 신앙이 그의 사역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그러나 헨리는 35권의 저서를 통하여,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이웃의 몸과 정신과 영혼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이웃들의 문제에 참여하고자 하는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신학자가 되었다. 전장에서 후퇴하는 대신 헨리는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계속되는 “문화전쟁”에 - 만일 이러한 전쟁이 있다면 그는 최근에 이러한 전쟁이 더 격렬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 나와 함께 참여하자고 호소하였다.



풀러 신학교



1947년 5월, 존 오켕가는 새로 문을 연 이 학교에서 교수로 일해 주도록 헨리를 초빙하였다. 바로 첫 해, 헨리는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의 학장 서리가 되어 실제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강의 업무로부터 시작하여 연례 로우즈 보울이스트 선라이즈 대회(1949), 미드센츄리 로우지보울 전도집회(1950) - 이 집회는 남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가장 대규모의 복음주의자 회의였으며, 여기서 빌리 그래함이 50,000명의 회중들에게 설교하였다 - 등과 같은 대규모 회의를 개회하는 일까지 이르는 다양한 업무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49년, 헨리는 복음주의신학회를 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55년 경, 그는 새로 발간되는 크리스탸니티투데이의 편집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 해 그는 빌리 그래함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편협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어느 진영에도 친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와 선교를 추진함에 있어 저에게 한 가지 타협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전적인 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와 세계전도대회



초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는‘크리스챤 센츄리’를 훨씬 능가하는 구독율(1967년 15만명)을 기록하며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잡지는 미국 복음주의의 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향력있는 잡지가 되었다. 게다가 어떤 집계에 의하면 이 잡지는 당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던 잡지이기도 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편집인으로서, 헨리는 에밀 브루너,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헬무트 틸리케와 같은 신학자들과도 대담하였다. 그는 세계 곳곳으로부터의 수많은 강연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의견은 복음주의적 진영과 세속 진영 양자의 출판사로부터 모두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역에 있어 절정기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10주년 사업으로서 1966년 서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전도대회를 후원했던 시기였다.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파견된 1,200명의 교역자들과 선교단체 책임자들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서 빌리 그래함은 명예총재로서, 헨리는 총재로서 봉사했다.



만년의 칼 헨리



칠십대와 팔십대에 그는 수많은 강연과 저술 외에도 동부침례신학교와 트리니티 신학교와 같은 여러 학교에서 잠시 가르쳤으며 또한 세계적인 강사로서 주로 국제월드비전, 그리고 최근에는 척 콜슨의 교도소 선교회에서의 일들을 하면서 그의 만년을 보내고 있다.

1976년, 그는 자신의 저서 ‘정체성을 찾는 복음주의자들’에서, 현재 무산되고 있는 복음주의 운동의 통일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일련의 운동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마치 신학의 지진학자처럼 그는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보수적 개혁교회 내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만사가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예고하였다.

몇몇 “복음주의자”들이 국가적인 각광을 받고 있고 그들의 전망이 밝다는 사실도 있었지만,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권위에 대한 정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여성의 성직임명에 관한 이슈 등 여러 이슈들을 놓고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미 카터가 “거듭난” 정치인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1976년을 “복음주의자의 해”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기간 동안 헨리는, 한때 그에게 어렵게 보였던 것이지만 이제 1980년대에는 진보적인, 혹은 “개방적인” 복음주의자 진영을 갖게 된 복음주의 운동을 확고하게 할 길을 찾느라 고심하였다. 이들 개방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무오성을 (역사와 과학을 배제한) “믿음과 실천”에 관한 문제로만 국한시키는 형태를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은 “교회의 핵심 전통”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성경 무오성은 근본주의자의 교리적인 발명품으로 매도하고 있었다.

헨리는 성경 권위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 대하여 노골적인 반대를 표명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경무오성을 확신하였다.

“나에게 성경무오 교리는 필수불가결한 교리이며, 교회는 이 이슈를 회피하는 것으로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오성의 의미와 의의에 관한 과열 논쟁을 인하여 복음주의 진영이 분리되는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복음적인 공동체의 회원이 되어 그 내분을 그치게 하고 핵심 인물들에게 가까이 가게 해줄 수도 있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같은 잡지의 편집권을 휘두르지 않았다.

헨리는 여전히, 자신이 지난 60년동안 사랑하였고 구주와 주님으로 모신 그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소원을 굳게 가지고 있다. 헨리와 그의 아내 헬가는 지금도 자신들이 성령의 인도 가운데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더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복음주의 운동은, 아주 인간적이고 매력있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심심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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