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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작성일  2001-01-31
 제목  <타임즈 강단>, 그리스도의 편지
 주제어키워드  그리스도의 편지  국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조회수  3511  추천수  14
그리스도의 편지



김순권 목사(경천교회, 시인 )



새 천년, 21세기를 맞으면서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

더 ‘편지’의 사명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시(詩)를 쓰면서 매년 이런 시를 쓰곤 합니다.



<편지>



하나님은

지구를 돌리고 돌리시더니

이제는 또 돌렸습니다.

2000호의 배를 태워 띄우십니다.



스스로 무얼 한답시고

멋대로 가질 말랍니다.



우체부가 갖다주는

주소지를 따라

가라십니다.

뉘게나

반가운 모습으로

소식을 담고

웃음꽃을 피우라십니다.

가득찬 사연은

삶의 질이요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이 보내 띄우는

편지들입니다.





1. 반가운 편지

편지를 받으면 다 기뻐들 합니다. 시골에서는 우체부만 봐도 반가워 합니다. 비록 자신에게 가지고 온 편지는 없어도 괜히 기쁩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은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누구와 만나도 반가운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반가울까요?



긍정적이라야

사람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얼굴에 담고 상대방에게 풍겨 주는 이미지가 있어야 됩니다. 찌푸린 얼굴은 상대에게 괜히 부담을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 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말씀했습니다. 둘째, 긍정적인 사람은 희망을 줍니다. 말을 할때도 부정적으로 하지말고 희망적인 말을 자주할 것입니다. ‘안된다’, ‘안된다’ 보다 ‘된다’를 많이 하고 용기를 주는 식으로 많이 말할 것입니다. 셋째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딘지 불안을 줍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은 평안을 만듭니다.



보고 싶은 사람 편지는 기다려집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할때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림의 존재입니다. 기다릴때 행복하고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고 생각할때는 더 행복에 젖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말은 그 그속에 달콤한 사랑의 창조가 들어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철학자 룻소가 말했듯이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나고 싶은 인간이 아쉽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관계가 이어지고 그 관계속에 역사는 창조되어 갑니다. 일찌기 마팀 부버(Martin Buber) 는 “나와 너”(Ich und Du) 라는 책에서 관계성 정립을 위해 ‘잘 만남’의 관계를 역설 했습니다. 그 ‘잘 만남’이란 인격적인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식은 금물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인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곧 편지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말 없는 내용의 사람편지는 침묵이지만 그 내용이 사연을 알립니다.

사람들은 실상 만나선 할 수 없는 말을 말없는 편지로 그의 속말을 알려줍니다. 편지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멀리 느꼈던 사람도 편지로 매우 가까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편지는 말이 없어도 옆에서 소곤 소곤 친절하게 말을 하듯 친근감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따뜻해야 합니다. 마음을 포근하게 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은사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공동체를 흐뭇하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가정도 , 사회도 마찬가집니다.



2. 교회의 편지

원래, 교회의 사명은 편지의 뜻이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교회를 이땅에 세우신 것은 복음 선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소식이 복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엡5장 23절) 모시고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역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뗄래야 뗄수 없습니다. 머리와 몸이 하나이듯이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편지의 사명으로 교회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 (에클레시아)

에클레시아란 말은 모인다는 뜻이 강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이는 그 곳에 내가 함께 하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초대교회때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가 바로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모임, 곧 회중입니다. 그 모임은 사람들의 회중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가리켜 회중(Congregation)이라 부릅니다. 미국에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도 있습니다.



흩어지는 교회(디아스포라)

교회란 모임으로 끝나서는 아니됩니다. 흩어진다는 말엔 더 큰 편지의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한 주님을 섬기고 고백하는 사람(회중)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다짐이 된 다음 ,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다 편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로 흩어집니다.



선교적인 사명

편지는 선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로 어딜 가나 소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적극적이고 소극적인 두가지 사명으로 선교하라는 말씀입니다. 빛은 적극적인 선교 방법입니다. 편지가 말없이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바르게 살면 전도가 됩니다. 스스로 교인이라고 자랑을 안해도 착한 행실을 보고 감화를 받고 빛을 따라 어둠의 생활에서 광명으로 따라 옵니다. 빛은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어둠을 내쫓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바로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역시 반가워 할 줄 알도록 빛을 비춰야 합니다.

소금은 자신을 희생시켜 냅니다. 소극적이라 함은 없어지면서 전하는 선교입니다. 자신은 없어지면서 전하는 선교입니다. 자신은 없어지지만, 결국 공동체에 맛을 남깁니다. 다 편지의 사역입니다.



3. 누구의 편지?

편지는 반드시 주인이 있습니다. 편지를 보면 누구(?)의 편지냐(?)묻습니다. 여기에 역시 편지의 묘미가 있습니다.



받는 사람의 편지엔 수신자가 있습니다.

분명히 그의 편집니다. 우리는 모두 편지를 받는 분입니다. 편지를 쓰신분은 주님이지만 받는 우리들도 편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걸어다니는 편지들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편지입니까? 그리스도의 편집니다. 쓰신분은 주님이시고, 먹은 살아계신 성령이고, 용지는 육의 심비, 즉 마음에 썼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고 그시스도의 복음으로 사연을 우리 마음속에 심었습니다. 또박 또박 박아 주셨습니다.



보내는 분의 편지

편지는 쓴 사람의 편지도 됩니다. 누구의 편지냐(?) 묻는데는 누구로부터 왔느냐(?)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편지로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 앞부분에 쓰기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우리들은 곧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일찌기 오래전에 예정하신 편지입니다. 편지가 나는 “한다” “안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편지는 쓰여질뿐이고 전해질뿐입니다. 그 뒤의 사역은 그 내용을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숱한 애기가 전개 됩니다. 편지의 사명만이 남게 됩니다. 우표만 붙이면 가고, 우체부가 전달해 줍니다. 중간의 심부름꾼은 기억되질 않아도 편지의 사연은 무한대의 일을 만듭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담고 사는 이땅의 크리스챤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준 편지들입니다. 편지의 사역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편지의 보람을 느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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