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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8건 중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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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10/27 |
칼빈, 마아거리트 당굴렘 방비에게 보낸 편지에거 칼빈은 이때까지도 자신이 인본주의자임을 나타냄. 이 편지 직후에 그는 회심(回心)을 경험한 것 같다. 1557년에 출판한 시편 서문에서 "하나님은 그의 신비로운 섭리로써 나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었다"라고 기록한 그 경험은 이때의 경험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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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10/27 |
세베루투스는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낼리줄 아록 있다가 화형의 선고가 내리자 실신할 정도로 낙망, 그는 파렐을 통하여 칼빈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하고 그자리에서 칼빈에게 사과하였으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27일 낮에 시청 앞마당에 나아와 선고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실신, 파렐의 부축을 받아 일어 섰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자신을 단죄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그날 화형에 처하였으나 끝까지 예수의 영원성을 부인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글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죽음. 이사건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대체로 칼빈이 정당하다고 했으며, 멜랑톤 조차도 칼빈에게 '정당한 처사'라고 써 보냈다. 이 일후에 제네바에서의 반칼빈파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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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10/27 |
팔영산기도원 창설. 1965년 교주 전병도에 의해 창설된 기독교계 사이비 신흥종교. 교주는 1915,10,27, 전북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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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0/27 |
황해도 장연군 매탄리에 [서상륜 기념비] 건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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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0/27 |
정춘수 감리교 목사 사망.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으로 원산지역 만세운동의 사전 계획을 주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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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0/27 |
한국교회여성연합회·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에서 정신대추모제 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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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27 |
감리교 대의원 총회-1930년의 교리적선언을 보완, 67년만에 새로운 신앙고백 채택, 복음주의 정신 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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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7 |
새문안교회 백리현 목사 브라질 선교사 파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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