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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5-12
 제목  이한응(李漢應, 1874. 9.21~1905. 5.12)
 주제어  이경천 [대한민국] [외교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호는 국은, 본관은 전의로 본명은 이경천이다.

비한 군수였던 이경호의 아들로 1874년 9월 21일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1892년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894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아버지 이경호가 동학 농민 운동에서 농민군을 진압하던 도중 황토현 전투에서 전사한 뒤 1899년 관립영어학교 교관으로 선출되었다.

1901년 3월 영국과 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으로 임명되어 영국 런던에 부임하였고 1903년 통정대부에 오르고 1904년 주영공사 민영돈의 귀국으로 서리공사가 되었다.

 

1905년 5월 12일 런던 주재 외교관 이한응이 일본의 국권박탈에 죽음으로 항쟁하기 위해 음독 자결했다. 그의 자결은 국권박탈에 대한 최초의 자결로, 일제침략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한응은 1901년 3월 영국·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 참사관으로 런던에 부임했으며 다음해 서리공사가 되었다.

 

1904년 8월 한일의정서가 체결되고, 1905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으려는 영국과 일본간의 비밀외교가 진행되자, 이한응은 침략적인 영일동맹 개정조약에 죽음으로써 항쟁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자결은 '대한매일신보' 등 국내 언론기관에 보도되었으며, 고종의 특명으로 시체를 국내로 옮겨 용인에 안장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한응의 유서 -

"오호라 국가는 주권이 없고 인종은 평등을 상실하여 각종 교섭에 치욕이 그지없으니 이 어찌 피끊는 자가 참을 수 있는 일인가. 오호라 장차 종묘 사직은 망하고 민족은 노예가 될 것이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치욕을 더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옳을 것이다."(한국통사 309쪽, 범우사, 박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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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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