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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22
 제목  한부선(Bruce F. Hunt, 1903. 6. 4~1992) 선교사
 주제어  헌트 [내한 선교사] [선교사] [미국]
 자료출처  홍치모 교수(한부선 선교사 탄생 백주년을 맞이하며)  성경본문  
 내용

아버지는 언더우드, 알렌과 같은 유명한 한국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했던 윌리암 헌트 선교사(1869-1953)로서, 한부선은 아버지가 사역하던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나중에 일리노이주에 소재한 휘튼칼리지를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를 거쳐 아버지가 걸었던 한국 선교사의 길을 아들도 따라 가게 된다.

 

이 분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한국초기 기독교역사가 그대로 나타난다. 평양 대부흥운동의 중심을 선교사의 아들로서 푸른 눈을 가진 아이는 그대로 그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일제강점하에 어지러웠던 한국교회와 일제에 협력했던 목사들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의 이후의 삶에 대해 그는 많은 것을 관찰자의 시작으로 느끼고 보았다. 당시 한국교회에 내려졌던 신사참배운동에 미국인으로 반대하면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포로교환형식으로 미국에 건너간후,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활동했던 참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민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했던 선교사이었다.

 

해방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장로교회가 성장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고, 1976년 귀국후에는 필라델피아 근교에 집을 얻고 당시 성장하던 미국의 한인교회를 순회하면서 많은 부흥회와 선교에 대한 도전을 주셨던 선교사이었다.

 

1992년 필라델피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설교를 하고 한국사람들에게 천국소망을 부르짓었던 선교사 이었다는 사실을 미국에서 알고 다시한번 이름모를 선교사들이 얼마나 한국교회와 한국민을 사랑했던지를 알게 된다. 한부선 선교사가 한국에 부임한 지 1년 후인 1929년, 스승이었던 메이첸 교수는 프린스톤신학교를 사임하고 필라델피아시에 새로이 독립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신학교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이다.

 

당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돌아가자 대다수가 프린스톤신학교에 가지 않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가서 신학의 재충전을 하였고, 한국 학생으로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김치선 목사였고, 그 다음으로 입학한 학생이 박윤선 목사였다.

 

박윤선 목사가 1934년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부선 선교사가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들어가서 1935 년에 박윤선 목사를 만나 알게 되었다. 한부선이 박윤선 목사보다 두 살 위였다. 당시 한부선 선교사는 박윤선 목사의 신앙생활과 학구적 태도에 감탄하여 말하기를 “자기가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것 같으면 저와 같은 사람과 손잡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였다.

 

그런데 1946년 그 꿈이 실현되어 부산 고려신학교에서 같이 봉사하였다. 한부선 선교사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 곳에서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메이첸 교수 는 북장로교회의 선교정책을 비판하다가 소속노회에서 제명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1935년까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졸업생을 각 노회에서 사취하여 목사로 임명하였으나, 총회의 결정 과 지시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졸업을 더 이상 시취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은 길은 새 교단 을 만드는 길 밖에 없었다. 이 때 한부선 선교사는 자신이 속하고 있던 북장로교회를 탈퇴 하고 새로 발족하는 정통장로회(당시 아메리카장로회)에 가담하였다.

 

한부선의 결단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고독과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 여 1936년 여름 그는 정통장로교회 선교사로서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부모와 친구들 이 속해 있는 북장로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스승인 메이첸 교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서였다기 보다는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고,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한부선은 북장로교선교사들이 없는 만주를 새로운 선교지로 정하고 만주에 있는 할빈시로 갔다. 그는 봉천노회에 가입하였다. 그가 부임한지 2년후인 1938년 9월 총대로 27회 발언을 했다가 일본 형사의 유도로 내던 짐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할빈으로 돌아가 1942년 여름 마지막 포로교환선을 타고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3년간 만주 할빈시를 중심으로 26개처의 한국교회를 돌아 보면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1941년 10월 체포되어 1942년 6월 본국으로 송환될 때까지 9개월 동안 감옥에서 가진 간수가 가져다준 말똥을 먹기도 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말똥을 먹는 것 쯤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한부선 선교사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운동을 가리켜 ‘언약운동’이라고 불렀다. 당시 한국교인들이 약 8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약 500명이 반대운동에 서명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한부선 선교사는 산디아고시에서 발행한 신문을 볼 것 같으 면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 탄생하는 대한민국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주관하고 있던 임시정 부를 맞이하여 그 기관을 주축으로 새로운 정부를 조직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한부선 선교사는 교회이건 사회이건간에 친일파와 친일세력을 새로 수립되는 정부에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요, 주장이었다.

 

한부선의 특징은 ‘진실’그 자체였다. 그는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허식을 싫어 했다. 그는 한국과 한국국민을 사랑했고, 어디를 가든지 한국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한국을 변호해 준 애국자였다.

그는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고도 남는 인물이지만 그런 것하고 인연이 먼 사람이었다. 그의 탄생 10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고신 교단은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행적을 기리면 서 그와 나를 비교해 보는 것이 어떨지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한부선은 소년 시절부터 네비우스의 원리에 기초한 그의 아버지의 선교 사역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한국에 처음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한지 17년 만에 한국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 교회가 원기왕성하게 자치 자립 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했다.

 

한국교회는 초기에 효과적인 선교 정책을 조속히 개발하여 실시하기 위해 1890년 6월 중국 지푸에 있는 선교사 죤 네비우스 (John L. Nevius)부부를 초청하여 선교원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네비우스가 제시한 선교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도한 사람을 책임지고 그가 전도자가 될 때까지 계속 양육해야 한다.

둘째, 교회운영과 기구조직은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직한다.

셋째, 교회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선발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다.

넷째, 예배당 건축은 자력으로 하게 하고 건물 구조나 양식도 선교지 고유의 양식으로 하게 한다. 이상의 선교정책을 클라크(Charles Allen Clark)는 자력전도, 자치제도, 자급운영 등으로 요약하였다.

 

이 정책의 중심 이념은 피선교지 교회가 외국인 선교사를 의지하여 허약하고 무능력한 교회로 키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자립적으로 발전해가는 능력 있는 교회,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강인한 체질의 교회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었다. 본서는 일제 치하의 숱한 고난 속에서도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의연히 추구해나갔던 한부선 선교사의 의로운 투쟁의 모습들을 담았다. 한부선은 성경적 신앙에 도전하는 세력을 강하게 질책하였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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