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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9-16
 제목  안익태(安益泰, 1906.12. 5~1965. 9.16)
 주제어  [애국가] [대한민국] [음악가] [작곡가] [지휘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작곡가, 지휘자.

안익태는 여관을 경영하는 중류가정의 셋째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6세 때에는 동네의 예배당에서 흘러 나오는 찬송가에 이끌리어 집안 몰래 교회에 나가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교회에서 풍금(올겐)을 만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되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꿈꾸게 되었고, 안선생이 7세 되던 해에 큰형이 동경에서 사다 준 바이올린 이었는데,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더욱 음악에 매혹되어 6개월을 연습한 후에는 찬송가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1914년 평양보통학교와 1918년 평양숭실중학교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관련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하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동경 세이 소꾸중학교 입학 하였다. 1926년 4월 일본 동경국립음악학교 입학(첼로전공)하고 1930년 일본 동경국립음악학교 졸업하고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신시내티 음악원 입학하고 미국 신시내티 시립교향악단 입단하였다. 첼로 연주자로 입단해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악단원이 되었다. 1934년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하였으며, 1936년 우리 나라 국가인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빈필·베를린 필·로마 교향악단·부다페스트 교향악단 등 200여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이름을 떨쳤다. 우리 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로 일컬어지며, 대표작으로는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등이 있다. 196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런던,남미 등의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였다. 특히 1936년에 작곡한 애국가를 주제로 한 한국환상곡 등을 자작, 지휘하였다. 1959년에 귀국하여 방송 교향악단 등을 지휘하기도 했다.

1962-1964년까지 3년간 서울에서 국제음악제를 주관했고, 런던 교향악단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했다. 1965년 7월 4일에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 직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9월 16일에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타계했다.

 

1965년 10월 15일 문화훈장에 추서되었다. 1977년 7월 유해봉환하여 국립묘지 제2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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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음악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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