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라쇼드퐁 출생하였고, 본명은 Charles Edouard Jeanneret 이다.
그는 화가였고 조각가였으며, 더 비밀스럽게는 시인이었다. 그가 그림이나 조가, 시를 위해 투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직 건축만을 위해 싸웠다. 건축만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정열적이고 복잡한 그의 희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격렬함을 갖고 건축에 임했다.
그의 논문은 《건축을 향하여(1922)》 《위르바니슴(1924)》에서 종합되었고, 또한 구체적인 도시스케일로 계획한 《현대도시(1922)》 《파리의 부아장계획(1925)》 등으로 국제적인 합리주의 건축사상을 만들어 갔다.
1927년 제네바의 국제연맹회관 현상설계에서 그의 응모작이 최종단계에서 심사위원단에 의해 거부된 것을 계기로 근대 전위건축의 가치를 옹호할 조직체의 필요성을 통감하여, 다음해에 근대건축국제회의(CIAM)의 창설을 추진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그에 관한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정말 그를 나타내는 말은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항상 도시를 꿈꿔왔다. 그의 '찬란한 건물군' 건설안은 거대한 정원에서 솟아나는 탑들이다. 그는 이 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수도원과 교회를 지었다.
1930년대 작품은 파리의 《스위스학생기숙사(1932)》, 파리 교외 《주말의 집(1935)》, 브라질의 《교육보건부 청사(1936)》 등이 있는데, 이 시기에는 근대건축국제회의를 무대로 한 도시계획안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제2차세계대전 뒤에는 국제연합 회의 사무시설의 기획과 기본설계를 시작으로 마르세유의 아파트 《위니테다비타시옹(1946~1952)》, 《노트르담 뒤오성당(1950~55)》, 《라투레트 수도원(1957)》,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1959)》 《프랑크푸르트 예술관(1963)》 등을 남겼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나는 오늘날의 인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고요와 평화를 위해서 일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샹디가르의 주요 건물 위로는 거대한 '평화의 손'이 솟아오를 것이며, 그 위에 히말라야의 새들이 날아와 쉴 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루브르궁에서 있었던 르 코르비제의 영결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르비제는 평평한 지붕을 선호했기 때문에 기와제조인에게, 그리고 유리, 콘크리트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관을 주장했기 때문에 석공들에게, 또 건물에서 장식을 배제시켰기 때문에 장식가들에게 원성을 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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