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교회사가. 농부의 아들. 1540년 신부 서품. 1545년 개혁자인 위샤트를 만나 강도사가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의 지도적 대변자로 개월 동안 프랑스 노예선의 노예로 복역하였다. 1549년 개혁설교로 퓨리탄의 지도자가 되어 세의 궁정목사로 진출했다가 메어리 여왕이 즉위하자 독일로 망명했다. 다음에는 스위스의 쥬네브에서 목사로 활약했으며, 1559년 귀국한 후에 종교개혁 전쟁기에 개혁파측의 설교자로 활약했다. 녹스는 평화를 갈망했지만 전운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성서는 단편적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신구약 전체를 동시에 읽으면서 함께 상고할 것을 지적했다. 성서의 더욱 명료한 이해를 위하여 주석가와 신학자들의 봉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성서의 권위를 주장하였지만 무오설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성서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사건은 역사를 통하여 주어진 계시라고 믿었다. 성서의 본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어디까지나 성서를 통하여 인간 경험속에서 찾아볼 때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