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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기드온이 사로잡아 죽인 미디안 왕들
 내용

성경:사사기8:1-3                   온유한 기드온

  적은 외부에만 있지 않고 내부에도 존재합니다. 사탄의 전략 중의 하나가 우리 내부에 분열이나 싸움을 일으키게 만들어 스스로 주저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깨뜨리려고 시도하는 사탄의 공격을 대비하여야 하여야 합니다.

Ⅰ. 시비 거는 에브라임(1절)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기드온을 만나자 크게 분노하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유는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자기네 지파를 배제시켰다는 것입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1절 중반절). 일부러 소외시킨 것 아니냐 하며 격렬하게 따집니다. 기드온의 처사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자신들을 이렇게 무시한 기드온을 향하여 드디어 원망과 분노로 폭발하였습니다. 섭섭한 마음은 쓴뿌리로 고약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섭섭하지 않게 배려해주고 대해주는 것 이웃사랑입니다. 혹시 우리 공동체 가운데 소외되고 있는 자는 없는가 하며 늘 신경 쓰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에브라임 입장에서는 기드온에 대하여 할 말이 많습니다.

Ⅱ. 위기를 만난 기드온
  아직 미디안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한창 전쟁 중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납니다. 어려움에 처한 미디안을 돕겠다고 나선 외부의 또 다른 적이 아니라 동족인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위기입니다. 지금은 힘을 모아 결속하여 미디안을 맞설 때인데 같은 동족인 에브라임이 기드온을 상대로 분노하고 있습니다. 당황되는 순간입니다. 적전(敵前) 분열은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지금까지 힘들게 일구어 논 공적이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Ⅲ. 기드온의 지혜로운 처신
  사실 에브라임의 분노는 정도를 지나친 데가 있습니다. 기드온이 에브라임을 무시하였기에 그들을 빼돌리고 미디안과 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이 미디안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 위해 이스라엘을 소집하는데 에브라임 지파 하나 만을 쏙 빼놓고 소집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사사기6:34-35). 에브라임 말고도 여러 지파가 그 소집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기드온이 특정 몇 지파만을 소집한 것은 지리적 혹은 시간적 이유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기드온 자신의 선호도나 개인 감정에 따라 일부러 지파를 선별하여 소집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이 이를 빌미로 시비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에브라임이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기드온의 요청에 의해 전투에 참가하게 되어 주목할 만한 전과를 올렸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이 점은 고려하지 않고 기드온에게 성을 내며 따집니다. 이러한 에브라임을 보노라면 기드온이 더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는 상황입니다. 크게 문제 될 일도 아니데 문제 삼아 시비 거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대할 때 괘씸한 생각이 들고 감정이 무척 상할 것입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며 한바탕 해 붙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냉정(冷靜)을 유지합니다. 흥분한 에브라임에게 이유를 설명하려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합당한 이유라 할지라도 지금은 에브라임에게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 수 있고 곧이곧대로 납득하려고 들지도 않을텐데 말입니다. 자칫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라도 되는 날이면 미디안에 대한 승리를 코앞에 둔 채 주저 않거나 아니면 역습을 받아 자멸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에브라임을 크게 세워줍니다(2-3절). 에브라임의 위대함을 칭찬합니다. 기드온 자신의 공적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놀라운 업적을 세운 에브라임이라고 치켜세워 줍니다. 지도자 기드온의 온유한 모습입니다.

  지도자의 온유함은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줍니다.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문제가 엉뚱한 데로 꼬이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됩니다. 본문은 기드온의 온유한 성품에 대하여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항상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이 오히려 기드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위험한 전쟁에 자신들을 끌어들이지 않은 기드온의 배려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크게 승리하고 나니까 엉뚱하게 배부른 소리하는 에브라임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에브라임을 달래고 품습니다. 그의 온유함이 참으로 큽니다.  


성경:사사기8:4-9      충성하는 자와 비협조(非協調)하는 자
 

 일에 충성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아주 비협조적인 자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면 좋으련만 실제 현장에서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나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내부의 충돌과 분열을 막기 위해 온유함을 보여주었던 기드온에게 또 한번 내부로부터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어떻게 처리하는 가를 보도록 합시다. 영적 싸움은 안팎의 적과의 전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Ⅰ. "비록 피곤하나 따르고"(4절)
  기드온을 따르는 삼백명은 끝까지 사명에 충성합니다. 그들은 기드온과 생사를 같이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목표한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쉬지 않고 뛰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기운이 떨어지고 지칩니다. 성경은 그들이 지치고 피곤하여 졌다고 묘사합니다(4절). 밤을 새워 싸웠고 며칠을 쉬지 않고 적을 추격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 못하였습니다. 뭐 좀 먹어야 힘을 쓰지 않겠습니까? 본문 '피곤하다'는 히브리어로 '   '(아예프)인데 녹초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허기짐과 쌓인 피로가 누적되어 거의 쓰러질 지경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효과적인 전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하나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할 지경인데도 삼백명 중 어느 한사람 불평하지 않습니다. 비록 몹시 지쳐 있어 맥을 못 쓸 형편이지만 자기 맡은 일에 계속 충성입니다. "비록 피곤하나 따르고", 눈물겹도록 충성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자들에 의해 크게 확장됩니다.

Ⅱ.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
  몹시 허기지고 지쳐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 병사들을 보고 기드온은 수습책을 마련합니다. 일단 원기를 회복시키고 근력을 강화하고자 요기 할만한 음식물을 찾습니다. 하지만 수중에 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근 숙곳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5절). 그들은 능히 기드온과 삼백명을 도와 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기에 민족을 위한 싸움에 앞장 선 기드온과 삼백명을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너무 의외였습니다.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데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는냐"(6절). 숙곳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유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전황을 보고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을 덜컥 도와주었다가 혹시 기드온이 패배하는 날이면 미디안의 보복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보다 자기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이기주의적 판단에 따른 행동입니다. 아마 기드온이 완전히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움을 청하였으면 그 땐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 싶어 재빠르게 도와 줄 아주 약아빠진 사람들입니다. 순전히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고 기회주의에 편승하는 약삭빠른 처신입니다. 브누엘 사람들도 기드온의 다급한 도움 요청에 숙곳 지도자들과 똑같은 대답을 하며 냉혹하게 거절합니다(8절). 같은 형제들은 지쳐 쓰러질 지경이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끝까지 참고 견디며 싸우고 있었지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이해득실을 따지며 아주 비협조적으로 나옵니다.

  이러한 숙곳과 부느엘 사람들에 대하여 기드온은 엄중한 응징을 약속합니다(7절, 9절). 온유한 기드온이지만 의로운 분노를 쏟아야 할 곳엔 타협하거나 묵과하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형제의 곤경을 보고도 자기 안일만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의 일에 함께 힘을 모아 감당하는 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빈부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이 면에 있어서 치우치지 않고 단호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기드온이 아주 비협조적인 숙곳과 브누엘에 대하여 즉각적인 응징을 하지 않고 나중에 일이 마무리 된 다음에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드온의 정확한 사리 판단 능력입니다. 응징과 주의 일을 놓고 우선순위를 고려했다는 사실입니다. 내부의 비협조적인 사람들을 처단하는 것보다 우선 주의 일을 마치는 것이 급선무였음을 보여줍니다. 주의 일에 팔짱 끼고 물러서 있는 자들은 먼저 권면해보고 나서 그 다음 징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의 일이 방해받지 않고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원칙을 잘 지키는 지도자가 성숙한 지도자입니다.  


성경:사사기8:10-12              기드온의 대승리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투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싫든 좋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왕 살벌한 전투의 자리로 내몰린 이상 승리를 얻을 때까지 잘 싸워야 합니다.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들이 우리 앞서 이러한 삶을 살았고 오늘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Ⅰ. 방심은 금물
  세바와 살문나는 그 당시 미디안의 왕입니다(사사기8:5). 한 나라에 두 왕이라, 양두정치(兩頭政治)의 한 형태입니다. 크게 맘먹고 미디안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한 그들은 뜻하지 않은 기드온의 기습공격을 받고 참패하고 말았으며 패잔병을 데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쳤습니다. 자그마치 십 이만명이나 달하는 군사를 잃어버리고 살아 남은 군사가 일만 오천 정도입니다(10절). 그런데도 세바와 살문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11절 상반절). 기습적인 선제 공격을 받고 후퇴하는 마당에 여전히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참패의 원인이 경계를 태만히 한 것임을 알고도 방심하고 있습니다. 너무 급작스레 당하였고 또한 숨돌릴 틈도 없이 도망치느라 정신 차릴 겨를이 없어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긴장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쉬지 않고 도망치느라 몹시 지쳐 있는 미디안 병사들이기에 쉴 때에는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바와 살문나는 이를 무시하고 방심합니다. 이에 대하여 세바와 살문나는 돌이킬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릅니다.

Ⅱ. 끈질긴 추격
  기드온은 첫 전투에서의 대승에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삼백명 가지고 십 삼만 오천명을 상대로 하여 무려 십 이만명을 죽였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큰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아마 인류 역사 전쟁사에 이만한 대승을 거둔 예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난 적들이기에 분명 한동안 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드온은 멈추지 않고 추격의 고삐를 바짝 쥐고 미디안을 따릅니다. 첫 승만을 가지고도 승리의 축배를 높이 들고 즐길 수 있는 마당이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붙어 경계를 늦추고 방심하고 있는 미디안의 남은 군사들을 또 한번 급습합니다(11절). 실은 이때의 미디안 전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록 첫 전투에서 어이없게 패배하여 군사의 대다수를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일만 오천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기드온을 따르는 군사는 삼백명에 불과합니다. 수적으로 월등하게 미디안이 우세합니다. 비록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어도 정신차리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대항하면 기드온이 크게 고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과감하게 적을 찾아 끝까지 달라붙습니다. 삼백명의 용사가 피로와 허기짐에 지쳐있지만 아직은 전쟁 종료가 아님을 알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급습 기회를 얻어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고 이에 놀라 또 달아나는 미디안을 또 추격합니다(12절). 마침내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최후 승리를 거둡니다.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12절 하반절).

  기드온의 승리로 전쟁은 끝나고 이스라엘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들은 쉬지 않고 적과 싸웠습니다. 승리에 자만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전투를 벌인 결과입니다. 본문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 전투에서는 방심은 절대 금물이요, 또한 궁극적인 승리를 얻기까지는 줄기차게 적을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전투는 휴전이 없습니다. 한 쪽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 됩니다. 사단이 우리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힘입어 끈질기게 싸워야 합니다.


성경:사사기8:13-21           뿌린 대로 거두는 인생

  우리네 삶의 특징 중 하나가 뿌린 대로 거둔다 라는 점입니다. "인생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6:7). 이것이 인생입니다. 땀을 심으면 풍요를 얻게 되고 콩을 뿌리면 콩을 거둘 것이고 게으름을 심으면 빈궁을 거두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을 받을 것이고 자비를 뿌리면 긍휼의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이 법칙을 적용하시는 데 있어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으십니다.

Ⅰ. 숙곳과 부느엘 사람들(13-17절)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최후 승리를 얻고 개선하면서 숙곳과 부느엘을 잊지 않고 찾습니다. 갚을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숙곳과 부느엘에서 당한 수모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허기져 극도로 지쳐있는 삼백명 부하들을 위하여 숙곳과 부느엘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그리고 긴급하게 떡을 요청하였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동족이기에 마땅히 도울 책임이 있는 그들이 냉혹하게 박대하며 빈정거린 말투를 기드온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도 이 것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드온에게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16-17절). 아마 숙곳의 칠십칠명의 지도자들은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고 나타났을 때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며 가시로 온몸이 찔려 고통에 겨워 할 때 자신들이 이전에 행한 대로 되돌려 받는 고통인 것을 뼈저리게 깨달을 것입니다. 그제야 진즉 자비를 베풀지 못한 자신들의 못된 행동에 대한 뒤늦은 후회로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부느엘 사람들도 망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기드온의 칼날에 성읍 사람들이 살해될 때에 극도의 공포와 형제가 어려울 때에 나 몰라라 하며 무정하게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로 뒤범벅되었을 것입니다. 인생은 뿌린 대로 결국은 거둡니다.

Ⅱ. 세바와 살문나(18-21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19절 하반절).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애초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주축 됩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행한 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기드온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그들을 죽이게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세바와 살문나가 그들이 지나온 삶의 여정에서 뿌린 것은 무엇인가? 기드온의 형제들을 살해한 악행이었습니다(18-19절). 여기서 기드온의 친형제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바와 살문나가 살해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다볼에서 세바와 살문나는 이스라엘 몇 사람을 잡아다가 잔인하게 살해하였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무시한 채 가차없이 칼날을 세워 죽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이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가 뿌린 대로 그대로 갚으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이에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죽입니다(21절). 기드온의 칼날에 목숨이 끊어질 때에 세바와 살문나는 아뿔싸 하며 뒤늦은 후회에 고통스러워했을 것입니다. 다볼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을(기드온의 형제들)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으면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무사히 고향으로 그리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너무 너무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인생이기에 좋은 열매 거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뿌릴 때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뿌리고 있습니까? 예사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뿌린 것을 거둘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금 심는 행위는 우리네 인생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매우 신중하게 고려하여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주식 투자는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못하지만 인생 투자는 하나님이 확실하게 보장하여 주십니다.


성경:사사기8:22-28                기드온의 신앙

  본문에 나타난 기드온의 신앙을 통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Ⅰ. 영광은 하나님께!(22-23절)
  전쟁 영웅 기드온이 개선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22절 상반절). 기드온, 당신은 우리 민족의 구원자요 우리의 영웅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을 높이 추대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22절 하반절). 기드온이 세운 업적에 비추어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이렇게 대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큰 공(功)을 세웠으니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드온 자신도 그 정도의 대우는 기대하여도 조금도 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자세는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명예와 권력에 욕심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는 권력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남들은 권력을 잡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를 쓰지만 그는 굴러들어 온 권력도 마다합니다. 그의 깨끗한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시선이 전쟁 영웅 기드온 한사람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기드온이 크게 보입니다. 기드온이 최고요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는 오직 기드온뿐이라고 여깁니다. 기드온도 정신 차리지 못할 지경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자신에게로 관심을 두고 우러러 바라봅니다. "좋소. 내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겠소. 나를 이렇게 추대해주니 내 기꺼이 감당하리라" 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순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집중된 이스라엘의 시선을 주 하나님에게로 돌려놓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로! 그의 멋진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는 기드온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이게 쉬운 것 아닙니다. 사람은 세상사람들이 쌓아준 높은 자리로 가뿐히 올라가 그 찬사와 영광에 도취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 위험을 넘깁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찬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야 한다는 바른 믿음이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하나님께로 모아져야 합니다.

Ⅱ. 빗나간 열심(24-28절)
  이스라엘 사람들의 찬사를 오직 믿음으로 극복한 기드온이 더욱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위합니다. 그것이 본문의 '에봇' 사건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열화 같은 성화를 자기의 소원 한가지로 대치합니다. "너희는 각각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24절). 이에 이스라엘은 아낌없이 금귀고리들을 그에게 줍니다(25절). 기드온이 이렇게 금귀고리를 원한 것은 재산 증식을 위한 데 있지 않고 '에봇'을 만들고 싶은 목적이었습니다(27절). 에봇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옷입니다(출애굽기28장). 그렇다고 기드온이 레위 지파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금에봇은 누구를 위한 옷인가? 순전히 기드온의 열심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겠다는 상징으로 금에봇을 만들어 두고두고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순수한 기드온의 신앙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봇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27절 하반절). 분명히 기드온은 에봇을 하나님 섬기는 대용품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주 하나님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혹은 미디안에 대한 승리를 후손들에게 교훈 삼아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전쟁 탈취물 중 한 종류인 금귀고리 모아 에봇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만든 에봇이 이스라엘을 타락의 이끄는 우상이 될 줄이야! 사람은 감각적이기에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대용품을 만들어 섬기고 싶은 심정이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그 적당한 대용품이 기드온이 만든 '에봇'인 것입니다. 기드온은 여기까지 생각하지를 못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에봇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의 교훈을 받습니다. 참 신앙도 빗나간 열심 때문에 후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봇은 결과적으로 기드온의 빗나간 열심 때문에 생긴 비극의 시작입니다. 제 딴에는 하나님을 위한 다고 나선 일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지도자의 영적 분별력이 참 중요합니다. 현재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그리고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탁월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기드온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 그 한가지에 충실했던 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하나님을 위한 빗나간 열심 때문에 실수 할 때도 있었습니다. 기드온의 에봇 사건처럼 때론 하나님을 위한 열심(熱心)도 자기 자신위주로 흐르다보면 연약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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