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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cmseoul  작성일  2008-04-11
 자료구분  주제어  주제어  기드온의 삼백 용사
 내용

성경:사사기7:1-3                  너무 많은즉

  기드온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여 든 자가 삼만 이천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대뜸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줄여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2절 상반절). 미디안에 비해 이스라엘 군사의 숫자가 정말 많아서 우리 주님은 그렇게까지 인원을 동원하여 싸울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말씀하셨을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Ⅰ. 교만을 경계함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2절 하반절). 사전에 교만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을 뽑아내려는 주님의 의도입니다. 교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이루었다 하면 우쭐해지는 게 인간의 간사한 마음입니다. 주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교만해 지는 꼴을 보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후에 미디안을 쳐부수고 나면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다고 자랑삼아 떠들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하십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사랑이 담긴 배려입니다. 그 만큼 이스라엘을 아끼신다는 증거입니다. 승리에 도취하여 교만에 빠지고 그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면, 이스라엘을 승리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이를 지켜 본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망하게 함이 아니었는가 하며 비웃지 않을까요?

Ⅱ.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패는 주님에게 달려 있음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습니다. 군사력의 우위가 승패를 좌우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삼만 이천명 다 보내어 미디안과 싸움을 붙여놓으면 나중에 딴소리 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용맹스럽게 잘 싸워 승리를 얻었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지고 인간의 능력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전쟁을 하게 되면 역시 자기들의 힘으로 얼마든지 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부족한데도 우리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싸움의 승리는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간증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Ⅲ. 하나님은 용기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자칫 교만에 빠질 수 있는 숫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우리 주님은 기드온에게 겁쟁이와 용기 있는 자로 구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3절 상반절). 그 말에 이만이천명이 보따리를 싸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일만명이 남아 있습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의 산물입니다. 믿음 안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대함이 넘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위이기에 두려움이 설자리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통하여 주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즉', 외적 요인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엄중히 경계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너무 많은즉', 눈에 보이는 환경을 크게 보고 하나님을 작게 보려는 불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너무 많은즉', 하나님의 능력을 배제한 채 자기 자신을 과신하려는 교만에 대한 지적입니다. '너무 많은즉',  정말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려는 주님의 교훈입니다.  


성경:사사기7:4-8                 아직도 많으니

  삼만이천명에서 이만이천명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니 일만명 남습니다. 이를 보고 있는 기드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으시고 '아직도 많으니(still many)'(4절)라고 하시며 더 추려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하시는 것일까? 지금 동네 싸움을 하자고 모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싸움에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은 애써 사람들 모으고 하나님은 모인 사람들 쫓아내기 바쁘십니다. 삼만이천에서 일만명으로 그리고 '아직도 많으니' 하시며 다시 삼백명으로 팍 줄입니다.

Ⅰ. 아직도 많으니
  하나님이 보시는 눈은 틀리지 않습니다. 기드온에게 남아 있는 일만명의 숫자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근거가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전히 주 하나님 외에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만명을 보는 기드온의 입장이 그럴 수 있고 또한 일만명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한번 힘을 합쳐 싸우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은연중에 가지는 자신감도 포함됩니다. 우리 주님은 이같은 자세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은 무려 이만이천명이나 되는 거대한 무리가 썰물 빠지듯 등을 돌려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못내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떠나지 않고 적과 싸우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일만명의 용기 있는 군사들을 보면서 크게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래, 겁쟁이 군사 수만을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야 용맹한 군사 일만을 가지고 싸우는 게 훨씬 잘 된 일이야. 사기충천한 일만명이면 되. 문제없어!'. 둘러 선 일만명을 바라보면서 든든한 마음을 가집니다. 일만명의 군사들도 이러한 기드온의 심정을 읽고 있었단 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걱정마십시오.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용감한 일만명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쳐 싸우면 미디안도 꼼짝못할 것입니다. 이제 적진으로 돌격합시다. 어서 진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이 기드온에게 들려집니다. "아직도 많으니 어서 수를 줄여라!"(4절).

Ⅱ. 오직 주 하나님
  "아직도 많으니", 주 하나님 한 분만 남기고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주님 외에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여전히 양다리 걸치는 식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미지근한 신앙 자세를 버리라는 주님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한 손으로는 주님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세상에 있는 것을 꽉 붙잡고 있다면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많으니 나 외에는 다 버려라!" 믿는 구석이 아무리 작아도 주님 외에는 철저하게 포기해야 할 것들입니다. 물질, 권력, 친척, 친구, 이웃, 자녀, 혹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은근히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신앙 자세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행동으로 옮기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주님 외에 붙들고 있는 부분부터 정리하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는 작업부터 하십니다. 우리가 이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완강하게 저항할수록 손해를 입는 것입니다. 주님 명령대로 다 솎아내고 나니 남은 군사가 '삼백명'입니다.(7-8절) '삼백명', 이젠 주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절박한 처지입니다. 기드온과 삼백명에게 남은 것은 싸움에 대한 용기가 아니라 주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진정 원하셨던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믿는 구석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기드온을 위하여 역사 하실 때가 이른 것입니다.

  '아직도 많으니' 라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네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속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도움 없어도 어느 정도 난 버틸 수 있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우선 그 부분부터 깨끗이 정리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쥐고 힘껏 움켜진 손을 펴고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너무 많은즉'에서 '아직도 많으니'를 넘어 '이젠 주님밖에' 로 겸손히 나아갈 때 온전히 드러납니다.    


성경:사사기7:1-8                 기드온의 순종

  믿음에는 행함이 따릅니다(야고보서2:14-26). 행함은 순종입니다. 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그 진가를 나타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순종의 강도가 세어진 자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주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내 믿음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마음에 믿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또한 입으로 고백한 것을 온몸으로 실천할 때 얻어지는 삶의 열매입니다. 읽은 본문은 기드온의 신앙이 한 단계 올라 선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장(사사기6장)에서는 의심의 그림자를 마음에서 지우지 못해 주 하나님을 시험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의 믿음은 놀라웁게 성장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Ⅰ. 절대 순종하는 믿음
  삼만이천명 가운데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돌려보내라는 주의 명령에 기드온은 순종합니다(2-3절). 그렇다고 쳐들어 온 미디안의 숫자가 그만큼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적의 세력은 막강합니다. 그런데 그는 주의 명령을 순순히 따릅니다. 처한 환경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숫자를 줄이라는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에 기드온은 잠잠코 순종합니다. 이번에는 너무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대폭적인 감축입니다. 남은 숫자가 고작 삼백명에 불과합니다. 처음 모인 숫자에 백분지 일도 못되는 기가 막힐 감축입니다. 말짱한 정신 가지고 따르기엔 지나침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항변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불평 한 마디 없습니다. 성을 내며 거부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 주 하나님을 상대로 두 번씩이나 시험했던 기드온입니다. 삼만이천명을 소집해 놓고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던 그에게 이젠 남아 있는 병력이 삼백명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기꺼이 따릅니다. 좀 이상합니까? 기드온이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될 때까지 가보자 라는 심정일까요? 아닙니다.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로 하여금 절대 순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Ⅱ. 오직 주 하나님
  세상 사람들이 기드온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틀림없이 미쳤다고 말할 것입니다. 미디안이 상당수 병력을 철수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면 기드온의 행동을 혹 이해할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없이 줄이는 그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요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생각하든 기드온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에게는 오직 주 하나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처음 믿을 때부터 기드온이 이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느냐? 아닙니다. 시작은 아주 나약한 믿음이었습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을 대면하여 직접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영 못미더워 재차 확인해야 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믿음이 연단 되었습니다. 한번 연단 된 믿음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숫자 팍팍 줄이라고 말해도 기꺼이 순종합니다.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정말 문제는 주 하나님이 없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제게는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이게 기드온의 신앙입니다. 저절로 된 게 아닙니다. 양털 한 뭉치 들고 의심을 풀고자 이틀 밤이나 주 하나님께 매달려 고민하며 얻은 열매입니다. 이젠 더 이상 주님을 불신앙하지 않겠습니다.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려면 겪어야 할 연단의 과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우리 믿음이 완성되는 것 아닙니다. 기드온에게는 양털 한 뭉치 들고 이틀을 갈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긴 다음엔 그의 믿음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토를 달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신앙의 수준에 이릅니다.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성경:사사기7:9-14            주님의 배려(配慮)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연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한계를 가진 피조물입니다. 오직 주 하나님만이 온전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전함을 닮고자 몸부림치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무조건 탓하지 않으시고 때론 감싸안으며 격려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배려는 세심한 부분까지 미칩니다.

Ⅰ. 기드온을 의한 배려
  삼만이천명 중 삼백명만을 남기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9절). 숨가쁘게 일이 돌아갑니다.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입니까? 미디안을 쳐부수고 고통받고 있는 민족을 구원할 기회가 왔으니 말입니다. 권능의 주 하나님이 함께 싸우실 텐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격 명령을 받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에 또 다시 두려움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밉니다. 기드온의 한계입니다. 연약함을 지닌 사람입니다. 고작 삼백명이지만 믿음으로 나가면 문제없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도 아울러 싸움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기드온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읽고 계셨습니다. 기드온이 자신의 내면에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신 주님은 그를 위한 한가지 배려를 베푸십니다. 그에게 용기가 필요함을 우리 주님은 느낍니다. 싸우기 전에 용기를 북돋워 줄 필요성을 느끼십니다. 아직도 두려움이란 실체를 벗어나지 못한 기드온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10-11절 상반절). 이에 기드온은 적진을 살피러 내려가서 미디안 병사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크게 용기를 얻습니다(11절 하반절-14절).

Ⅱ. 주님의 세심한 배려
  두려움을 영 떨치지 못하고 있던 기드온은 미디안 진영을 정탐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적 병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됩니다(13-14절). 그 순간 기드온의 입에서 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15절 상반절).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늘을 찌를 듯한 용기가 솟구칩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다소 위축된 기드온의 사기를 힘껏 북돋워 줍니다. 아직도 두려움에 붙들려 있는 기드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신앙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십니다. 주님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으니 기드온은 자신의 두려움과는 상관없이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기드온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채 싸우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내면에,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아 겉으로 태연한 척 할 수도 있을, 기드온 자신만의 두려움을, 기드온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을 우리 주님은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손을 써서 그가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리저리 마음 써 주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간구하지도 않은 작은 부분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신앙 성숙을 위해 신경 써 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주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까!

  여전히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오직 믿음 오직 예수 하면서도 불신앙적인 요소를 안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감당치 못할 내면의 고통에 힘들어 할 때도 있습니다. 한가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네 삶의 미세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으시고 살피신 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넌 그 모양 그 꼴이냐 하며 탓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넌 나의 관심과 도움을 입어야 되는구나 하며 미처 구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먼저 챙겨 주시는 정말 너무 자상하신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지난번에는 의심을 풀기 위해 양털 한 뭉치 들고 먼저 기드온이 하나님께 나아갔었지만 이번에는 주님 쪽에서 기드온이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두려움을 멀리 쫓아 내주기 위하여 먼저 손을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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